이제, 암 발생의 스위치를 끌 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의철
베지닥터 사무국장
내가 콜린 캠벨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의 초판인 <건강·음식·질병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통해서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지어 뇌심혈관질환까지도 식습관을 바꿈으로써 예방하고 치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즈음, 아내가 이 책을 권해주었다. 당시 나는 환자들에게 현미밥과 채식위주 식단으로 바꾸라고 권하기 전에 내 스스로 먼저 채식을 하면서 몸의 변화를 관찰하고, 채식을 하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현미채식을 실험하면서 먹는 것의 힘을 배우고, 동시에 이 책을 통해서 그것에 대한 학술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실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대부분의 의사들처럼, 음식으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다른 의사들에게 먹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얻게된 자신감을 떠올리면 의사들이 설득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주변 의사 선생님들도 다른 건강관련 서적과 달리 이 책은 무척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캠벨의 연구와 주장을 더 배우고 싶어, 바로 책에 소개된‘콜린캠벨재단(T. Colin Campbell Foundation)’에 접속해 캠벨이 주관하는 코넬대학의 ‘Plant-Based Nutrition’강의를 수강하고, 원서인 <The China Study>를 다시 구입해서 읽었다.‘ Plant-Based Nutrition’은 총 6주에 걸쳐 진행되는 온라인 강의였는데, 음식과 건강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여러 개별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기존의‘영양소 기반 영양학Nutrient-Based Nutrition’, 즉 환원론적 접근법의 한계와 영양소의 복합체로서 식품을 기반으로 한 접근법Food-Based Nutrition의 유용성과 가능성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이 책에서 알게 될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단백질과 암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결과일 것이다. 현재의 영양학은 단백질 영양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단백질을 숭배한다. 몸보신, 영양식 하면 다들 단백질을 떠올리고, 육류, 가금류, 생선, 계란, 우유 등을 떠올린다.
단백질이 몸에 좋다는 것이‘상식’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몸은 이런 식품들과 단백질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할 경우 암을 비롯한 다양한 만성질환들이 발생할 수 있다. 캠벨이 20여 년간 수행한 연구의 결론은 단백질이 암 발생을 껐다 켰다 하는‘암 발생의 스위치’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단백질을 섭취 칼로리의 10퍼센트를 넘게 섭취할 경우 암발생이 증가한다! 이런 믿어지지 않지만, 매우 일관되고, 현실에서도 입증되는 연구결과가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한국영양학회에서 권장하는 단백질 섭취량은 전체 칼로리의 7~8퍼센트 수준으로, 1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TV와 건강관련 서적들, 그리고 언론과 정부의 지침을 통해서 인체 필요량의 2배에 해당하는 10~15퍼센트의 단백질 섭취를 권고 받고 있다. 캠벨은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답게 학계, 의료계 그리고 정부가 어떻게 축산업계의 입김에 영향을 받게 되는지 본인의 경험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들을 예로 보여준다. 음식과 건강에 대한 여러 과학적 사실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런 어두운 현실을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서로 상충하는 많은 정보들 속에 결국 최종적인 선택은 우리 스스로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누구의 말이 맞는지 취사선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캠벨의 조언은 추가적인 도움을 준다.
사실 캠벨의 책 <The China Study>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학과 영양학, 과학 일반에 대한 배경지식과 연구결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일반인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풀어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The China Study>의 한국어 초판 <건강·음식·질병에 관한 오해와 진실>은 애초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서를 지향했다. 그래서 원서에 실린 상세한 연구결과들이 과감히 생략되고 결과의 의미만이 실렸다. 하지만 캠벨의 책이 다른 건강관련 서적들에 비해 갖는 장점은 풍부한 과학적 근거에 있다. 그런 면에서 원서의 일부 연구 내용만을 소개하고 있는 한국어 초판은 그 내용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긴 했지만, 원서의 실로 방대하고 설득력 있는 상세한 연구결과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원서를 읽으면서 느꼈던 이런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을까 하던 차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어 개정판을 낼 계획인데 감수를 맡아달라는 연락이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수락을 했다. 특히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 2장과 3장의 단백질과 암과 관련된 부분은 원서를 충실히 해석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한국어 개정판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이다. 전문가적 입장에서 캠벨의 역작 <The China Study>의 모든 내용들을 다 소개할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이 남지만, 캠벨 연구 인생의 핵심인 단백질과 암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지난 10년간 발생률이 증가한 암은 남성의 경우 대장암, 전립선암, 여성의 경우 유방암, 대장암이다.
모두 동물성식품(육류, 가금류, 생선, 유제품 등) 섭취와 관련이 큰 암들이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동물성식품 섭취량은 10배가량 증가했다. 급격한 식생활의 변화로 인한 결과들이 빙산처럼 이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이런 건강상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캠벨은 그 방법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백질, 특히 동물성 식품을 통한 단백질 섭취를 줄이고, 가공되지 않은 식물성 식품들에서 대부분의 칼로리를 섭취한다면암뿐만아니라현대인들을괴롭히는대부분의만성질환들(뇌심혈관질환, 당뇨병, 자가면역질환, 골다공증 등)을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미의 경우 칼로리의 8퍼센트가량이 단백질에서 나오기 때문에 현미밥으로 대부분의 칼로리를 섭취할 경우 추가적인 단백질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즉, 현미밥에 채소와 과일만 먹어도 단백질은 결코 부족하지 않으며, 부족한 영양소 섭취를 위해 동물성 식품을 먹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암이나 질병에 걸릴까 두려워 민간의료보험을 든다. 하지만, 보험에 가입한다고 질병이 예방되는 것이 아니다. 암과 질병을 예방하려면 먹는 음식을 식물성 식품으로 바꾸고, 생활습관을 보다 건강하게 바꿔야한다. 2009년 기준으로 한해에 140만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제, 암 발생의 스위치를 끌 때다. 교훈을 얻기 위한 희생은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