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여섯살 꼬마가 즐겨읽는 동화책 중에 <아기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라는 책이 있다. 유명한 동화 <아기돼지 세 마리와 늑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약간 변형시켜 꾸며놓은 이야기다. 못된 돼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멋진 꼬리를 가진 세 마리의 아기늑대들은 마지막에 튼튼한 콘크리트집을 짓고 수십 개의 자물쇠를 매달지만 결국 그 못된 돼지는 망치로 집을 무너뜨리지 못하자 폭탄을 터뜨려 집을 부숴뜨리고 만다.
아기늑대들은 뭔가 그들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름다운 꽃과 풀들로 다시 집을 짓는다. 역시 잊지 않고 아기늑대들을 찾아온 돼지는 꽃으로 만들어진 그 집을 입으로 훅 불어서 날려버리려고 하다가 그만 꽃향기가 코로 들어가 갑자기 화난 마음이 없어지고 춤을 추게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기늑대들도 밖으로 나와 돼지와 함께 춤을 추고 놀다가 돼지를 그들의 집안으로 초대해 같이 차를 마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돼지에 <자연>을 대입해보고 아기늑대들에 <사람들>을 대입해 보았다. 나약하던 인간들은 자연의 위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 문명이라는 울타리를 꾸준히 발달시켜왔고 급기야는 문명의 발달을 빌어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고 무너뜨리기까지 하지만 오늘날 지구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재난들은 꺾이지 않는 분노처럼 사람들을 다시 공격해오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빙하가 녹고 이상기후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암과 같은 난치병과 희귀병들이 의학기술을 앞질러가고 있고 변종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들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하고 있다.
왜일까?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과 태양과 대지와 바다는 온갖 식물과 작은 생명체들을 키우고 다시 그 하늘과 태양과 대지와 바다와 온갖 식물들과 작은 생명체들은 이 땅위의 수많은 동물들을 키우고 있으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대자연의 은혜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주위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우리의 동반자인 가축들, 숲 속의 사라져가고 있는 야생동물들, 흙과 물과 공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류의 발달된 기술과 지식들은 어디서 온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자 감정을 가진 동물들(자연은 우리와 똑같이 그들도 품어 키우고 있다)이 공장의 상품처럼 취급되고 있으며 그들의 고통에 젖은 피와 살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자신들을 먹이고 있으며 온갖 화학물질들로 오염된 땅과 물에서 자란, 심지어 자연의 섭리와 무관하게 조작되어 자라난 식물들로 우리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우리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하루에 수십 종의 야생동물들이 멸종되어가고 있고 수천년간 마르지 않았던 아마존의 거대한 강들이 마르고 있고 아름다운 작은 섬나라들이 해마다 물에 잠겨 사라져가고 있는 이때 우리를 가슴으로 키워온 어머니 지구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우리는 내일이 아닌 지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꿈의 힘을 믿는 나는 내 아이들이 자랄 지구의 미래를 이렇게 꿈꾸어본다.
두려움 없이 사랑과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연의 은혜 속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 동물들과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뛰어놀고, 여기저기서 나무와 꽃들이 환희의 몸짓으로 흔들거리고 인류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번영하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죽임은 죽임을 낳고 파괴는 파괴를 낳으며 사랑은 사랑을 낳고 살림은 살림을 낳는다는 겸허한 깨달음 위에 사랑과 이해와 조화로써 살아나갈 밝은 세상이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될 것임을 믿고 싶다.
끝으로 치닫고 있는 것만 같은 문명의 위기에서 우리자신을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거대한 기술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의 촛불을 밝히는 것임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