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산이야기
제가 조~ 아래 철분이야기를 쓰면서 20세기에 아이를 낳은 나는 엽산을 먹지 않았는데 왜 21세기 임산부는 꼭 엽산을 먹어야만 하는가? 시간이 나면 이 이야기를 꼭 좀 하고 싶다고 글을 마무리했었는데요, 저번 달인가에 대학원 강의를 하다가 이 엽산얘기를 잠시 하게 되었어요, 강의 중 흥분 좀 했었죠. 이래저래 관련된 인간들 욕 좀 한다구요^^.
강의하면서 문득 이 참에 베지닥터에 다시 글을 하나 올려야겠다는 맘이 불끈! 치솟았었는데.. 쓰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출장길에 기차 안에서 그냥 확실히 써버리고 말겠다고 결심하고 사실 논문 몇 개도 챙겨서 왔거든요. 그런데 서울역에서 KTX를 기다리다가 며칠 전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들이 궁금해서 베지닥터에 접속을 해보니 오호라~ 엽산에 대한 질문이 하나 올라와 있네요.
꿈은 늘 개꿈만 꾸지만 저한테는 아무래도 아무도 못 말리는 신기가 있는 듯..^^
엽산은 수용성비타민인 B군에 속하는 비타민이죠. 녹색 잎을 가진 채소에 많다고 잎엽자를 써서 엽산이라고 부른다고 하구요. 하지만 녹색잎을 가진 채소 외에도 콩이나 과일 동물의 간에도 많다고 합니다. 엽산은 유전정보를 담고있는 DNA 합성에 필수적인 성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포가 왕성하게 분열을 하는 시기에 엽산이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구요. 특히 임신시 엽산이 부족하면 아래 사진과 같은 신경관결손의 발생위험이 높아집니다. 음.. 눈에 집어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기가 내가 임신 때 엽산을 충분하게 섭취하지 못해서 저런 모습으로 태어난다.. 참 억장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림 1. 신경관결손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
1996년 Journal of Nutrition이라는 잡지에 “More folic acid for everyone, now”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립니다. 미국의 CDC(질병관리본부) 소속의 연구자들이 발표한 일종의 editorial인데요 제목에서 보듯이 “지금 당장” “모든 사람들이” 엽산이 더 필요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밀가루나 시리얼에 엽산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연구자들 소속이 birth defect를 주로 연구하는 부서인데 이 연구자들 눈에는 엽산 부족으로 발생하는 신생아의 신경관결손이 얼마나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로 보였겠습니까? 이해합니다.
1998년 드디어 미국에서는 시리얼과 밀가루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먹는 주식에 엽산을 의무적으로 첨가하는 정책을 도입합니다. 몇몇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정책을 폅니다. 미국 CDC에서는 이 정책이 시행되고 미국인들의 혈중 엽산 농도가 증가하고 신경관결손을 가지고 태어나는 신생아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고 무지하게 자랑을 해댔죠. 여기까지는 Fact!!
그런데 그로부터 십 년쯤 흐른 2008년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이라는 잡지에 “Is folic acid good for everyone?”이라는 부정적인 기운을 한껏 품은 제목을 가진 editorial 한 편이 발표됩니다. “음…과연 엽산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까요?” 라고 묻고 있는데요.. 이렇게 묻고 있다는 자체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죠.
최근 엽산 과다복용과 관련된 문제점이 서서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암과 같은 경우 엽산은 dual effect가 있다고 보는데요 암이 처음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엽산이 암예방의 효과가 있으나 이미 암세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엽산이 오히려 암으로 진행하는데 도와주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원천봉쇄라는 걸 훨씬 더 좋아하고 그것이 뭔가 더 근본적인 대책인 것 같이 생각합니다만 우리 몸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암세포가 생기고 이를 우리가 가진 면역체계로 없애고 또 생기면 없애고 하는.. 물고 물리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예방이라는 것이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는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생명현상이 가진 기본 시스템상 현실에서는 그 단계에서 예방이라는 것은 그리 현실성이 없을 듯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하나의 암세포라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실제 상황에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구요. 뿐 만 아니라 과다한 엽산은 면역기능을 교란시킨다든가 인지기능을 저하시킨다든가 하는 보고도 있죠.
그럼, 임신때는 어떨까요? 임신시 먹는 엽산은 신경관결손을 가진 기형아를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임신초기 혹은 고령임신에는 엽산제 복용이 거의 필수로 되어있더군요. 그리고 이 말은 일정부분 맞습니다.
그런데요.. 엽산은 단순히 신경관결손의 예방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매우 중요한 성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잘 아시겠지만 후생유전학이라고 불리우는 아주 hot한 분야가 있습니다. 전통유전학에서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자체에 관심이 있지만 후생유전학에서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자체보다는 유전자의 발현에 관심이 있죠.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100%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 발현양상에 따라서 완전히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유전자가 100%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인데 유전자발현이 달라져서.. 태어나보니.. 헐~ 하나는 김태희, 하나는 조혜련이라는 거죠.
이 후생유전학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가교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결국 매우 다양한 환경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환경 요인 중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는 제일 중요한 것 두 가지가 바로 “음식”과 “화학물질” 입니다. 유전자가 100% 동일한 쥐를 임신시켜놓고 어미쥐에게 어떤 음식을 주었느냐,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시켰느냐에 따라서 쥐의 외모가 달라지고 나중에 자라면서 암, 당뇨병, 심장병 등 각종 질병이 발생할 위험까지 달라지는 것이 바로 후생유전학입니다.
음식 중에는 특히 엽산과 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영양소들이 이러한 유전자발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 영양소는 유전자 발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전자의 메칠화에 직접 관여하는 종류들이거든요. 아래 5마리 쥐들은 100%유전자가 동일한 쥐들인데요 어미쥐에게 임신시 엽산 및 관련 영양소들을 얼마나 주었느냐에 따라서 태어났을 때 모습이 이렇게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3). 겉모습이 이렇게 달라지는데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 안 되는 세포수준의 반응들은 얼마나 다를까요?
그림 2. 저,..우리는 유전자가 완벽하게 똑같은데요..믿어주세요..
제가 베지닥터 칼럼에서 누차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다양한 영양성분들간의 밸런스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엽산은 유전자 발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만 그 기전을 보면 엽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영양소들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 중 엽산만을 골라서 보충제로 과다복용을 하게 되면 당연히 밸런스의 파괴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평소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칫 부족하게 되기 쉬운 비타민 B12치에 비하여 엽산치가 너무 높아지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엽산보충제를 보면 이런 저런 다른 성분들을 같이 섞어놓기도 하는데요. 연구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never, ever 인공적으로 그 밸런스를 최적화할 수 없습니다. 원래 다른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지고 있었던 그 밸런스를 우리가 그대로 먹는 방법밖에는요.
2009년 임신시 엽산보충제를 먹은 엄마들한테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린시절에 천식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는 연구결과가 보고 된 적이 있습니다 (3). 그런데 1년 후 다른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자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보고합니다 (4). 역학연구가 가진 속성상 아마 결론없이 이런 공방이 지루하게 계속 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면 지금의 철분제처럼, 그 때는 임신때 엽산보충제를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무도 거부하지 못하는 진실이 어느새 되어 버립니다.
그림 3.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과학적” 연구의 진실
우리는 과학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살고 있죠. 엽산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신경관결손 하나만을 두고 이러니 저러니 떠드는 것,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공장에서 만든 엽산을 “처”바르고 혈중농도가 올라갔다고 좋아하는 것, 임신하면 누구나 엽산을 보충제로 먹게 만드는 것, 전부 과학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장님 코끼리 더듬고 있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엽산부족을 예방하기 위하여서는 “엽산이 많이 든 음식을 충분히 먹는 것“, 저는 이것만이 가장 과학적인 결론이라고 믿습니다.
참고문헌
1. Oakley GP Jr, et al. More folic acid for everyone, now. J Nutr. 1996;126:751S-755S.
2. Smith AD, et al. Is folic acid good for everyone? Am J Clin Nutr. 2008;87:517-33.
3. Waterland RA, et al. Transposable elements: targets for early nutritional effects on epigenetic gene regulation. Mol Cell Biol. 2003;23:5293–300.
4. Whitrow MJ, et al. Effect of supplemental folic acid in pregnancy on childhood asthma: a prospective birth cohort study. Am J Epidemiol. 2009;170:1486-93.
5. Magdelijns FJ, et al. Folic acid use in pregnancy and the development of atopy, asthma, and lung function in childhood. Pediatrics. 2011;128:e135-44.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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