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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04 13:47
내가 더 이상 논문을 쓰고 싶지 않는 이유
 글쓴이 : 이덕희
작성일 : 13-06-04 13:47 조회 : 3,947  
제가 한 때 연구원 한명 없이 혼자서 일년에 논문 10편씩 쓰던 시절이 있었어요. 채식 어쩌구 저쩌구에 나오는 GGT POPs에 삘이 꽂혀있었던 약 10년 동안이었는데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서 아침이 올 때까지 논문을 써 갈기던 시간들이었죠. 어떻게 연구원 한명없이 그게 가능하냐? 궁금해 하실 분들이 있겠는데요 제 전공분야인 역학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저는 주로 국제공동연구를 통하여 제가 가진 crazy한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를 했었죠.
 
단언컨대 교수 생계유지용 실적 쌓기 논문은 한 편도 없었구요 거의 대부분 현재 연구자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들에 대하여 심하게 시비를 거는 그런 논문들이었어요. 저는 세상의 상식에 태클을 거는 그런 주제의 논문을 쓰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Reviewer들과 격렬하게 논쟁을 하는 것이 그렇게나 체질에 맞더군요 (저는 아무래도 이놈의 성질 때문에 일찍 죽을 것 같아요)..  엔돌핀이 매일 매일 팍팍 도는 것이 느껴졌죠
 
그 과정 중에 현재의 분자생물학, 유전학 등에 기초한 의학연구의 방향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유명한 DNA 발견부터 시작하여 작금의 분자생물학 연구들은 20세기 후반을 통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고 그러한 연구들을 통하여 과거에는 이해조차 하지 못했던 많은 중요한 사실들이 밝혀지고 생명과학 지식들이 축적됩니다
 
그런데 생명현상을 좀 더 잘 이해한다고 해서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질병 발생의 기전을 이해함으로써 그 질병을 정복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목적으로 엄청난 연구비를 가지고 수행되는 그 수많은 실험연구들.. 유전자조작을 통하여 만들어낸 knock-out, transgenic 마우스들.. 이러한 기술들을 기반으로 한 실험연구들이 생명현상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데는 다소나마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질병의 실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만드는데 일등공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들.. 특히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포수준에서 분자수준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정량화하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최고급 분자생물학적 기술들이 개발되면 될수록 연구자들은 문제의 본질보다는 나타나는 현상에만 주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 이런 생각들이 계속 제 머리 속을 맴돌았어요
 
2007년도인가에 논문실적이 많다는 이유 단 하나로 연구재단인가에서 공모하는 의학연구센터에 저희 대학 대표선수로 한번 출전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대표선수 인만큼 현재의 분자생물학에 기초한 연구방향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우리센터에서는 그러지 않고 이렇게 연구를 하겠다 뭐.. 이런 센터설립목적을 가지고 나갔죠. 그런데 공개 심사과정 중에 거의 대부분 분자생물학을 전공으로 하는 유수한 대학의 교수님들이신 심사위원들과 얼굴을 붉히며 까지 논쟁을 벌였고 결국 탈락했었죠. 뭐 학교에는 좀 미안했지만 그 심사위원들에게 더 까놓고 통렬한 논박을 못한 것이 나중에는 아쉽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던 제가 몇 년 전부터 시들해지기 시작했어요.. 신체적으로 노안도 오고 난소기능도 다 되어가는 것 같고 여기저기 맛이 가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연구를 한다고 논문을 발표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자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죠. 이미 세상은 멈출 수 없는 청룡열차안에 들어가 있더군요.. 돌면 돌수록 가속도를 점점 더해가고 있는 청룡열차.. 누군가가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현실자각을 그제서야 한거죠
 
그리고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이 모두 연구로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는 것은 수치로 정량화할 수 있는 것, 표나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되며 연구자로서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은 결국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는 주제로 제한될 수 밖에 없더군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으면 반드시 논문으로 보답을 해야하거든요.. 나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연구계획서를 쓰다가 홧병 걸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연구비를 딸려면 자신의 연구를 무지하게 과장하고 포장해서 연구계획서를 써야 합니다. 마치 이 연구로 세상을 질병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처럼..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정말 체질에 맞지가 않더군요.. 저도 나름 연구비 수주를 잘 하는 연구자였긴 했지만 내가 결국 이 사회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반드시 이 연구를 필요로 하고 논문 발표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베지닥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 즈음부터였어요..
 
사실 제가 전공하는 역학이라는 것은 전통 실험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secondary science로 간주되는 학문영역입니다. 무슨 기전을 속시원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통계학적인 관련성만을 보고하는 질낮은 하급 연구라는거죠. 동의합니다. 사실 역학연구들중에도 정말 kind of trash가 많아요. 너무 쉽게 접근하고 너무 쉽게 해석하고 너무 쉽게 세상의 논리에 동의해버리죠
 
그런데 저는 역학이라는 분야를 통하여 문제를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미시적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보면 멀리서 보기와 가까이에서 보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죠. 질병문제를 접근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연구자들이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동시에 가지고 문제를 이해할려고 해야만 내가 하는 연구가 정말 문제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서는 연구인지, 아니면 비록 최고급 분자생물학적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론적으로는 state of art 연구이지만 문제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연구인지 알 수 있어요
 
왜 암이 이렇게 계속 증가하는가? 당뇨병은 왜?? 자폐증은 왜?? 치매는 왜?? 이런 병들이 유전자 발현이 이상해져서 생기는건가요? 세포내의 단백질 구조가 이상해져서 생기는건가요? 수용체 발현이 잘못되서 생기는건가요? 신호전달체계에 문제가 생겨서 생기는건가요? 이건 대부분 현상이고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질병발생 과정중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 중에는 생명체가 보상기전으로 작동시켜서 나타나는 현상도 많습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이러한 질병들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보다는 세포수준에서 발생하는 기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궁극적으로 그러한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자는 점점 더 세포내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어떠한 환상적인 치료를 받더라도 그러한 세포내 이상현상을 가져오게 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대책이 동시에 있어 주어야만 그 환상적인 치료가 빛을 발합니다. 이것은 의사가 대신해줄 수도 연구자가 대신해 줄수도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제가 채식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글에서 적었듯이 저는 아주 낮은 농도의 복합 화학물질에 대한 만성적인 노출은 지금 만연하는 많은 만성질환의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의 원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담배죠. 그렇지만 담배라는 이름을 붙여놓아서 그렇지 사실 담배라는 것은 아주 낮은 농도의 복합 화학물질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비만이 온갖 질병을 일으킨다구요?? 비만 그 자체가 아니고 지방조직속에 축적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혈액으로 유리되어 나와서 각종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지용성 합성화학물질이 키입니다. 동물성식품을 많이 먹으면 해롭다구요? 현대의 동물성식품안에는 그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체내에 축적되었던 화학물질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화학물질에 대한 만성적인 노출이 바로 유전자발현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리고 수용체를 제대로 작동 못하게 만들며 신호전달체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주범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아주 낮은 농도의 복합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통하여 매우 광범위하게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내가 원한다고 절대로 노출 제로로 만들 수가 없어요. 가끔은 세상잡사 다 접고 산속에 들어가 사시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살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그로 인하여 받는 스트레스가 미치는 해악이 더 클겁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노출을 피하는 것은 본인이 스트레스 안 받고 할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하시고 다른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저농도 화학물질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우리 몸의 문제들은 화학물질들이 직접 세포를 공격하여 나타나는 독성 때문이 아니라 돌아 돌아 간접적인 기전을 통하여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직접적인 노출을 피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래 글에서 언급한 호메시스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호메시스가 작동하면 아주 낮은 농도의 복합 화학물질에 대한 만성적인 노출로 인하여 세포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호메시스 작동시키는 방법 읽어보셨죠? 무림의 초절정 고수들은 방사선으로 다이옥신으로 청산가리로 작동시키는거구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식물성 식품안에 듬뿍 든 파이토케미칼로, 운동으로, 소식으로 작동시키는 겁니다
 
또 이미 몸 속에 들어가 있는 화학물질 배출에 노력하세요. 역시 식물성식품안에 많이 든 식이섬유가 어떤 약보다 어떤 건강보조식품보다 효과적입니다. 밥을 현미로 바꾸고 꼭꼭 씹어서 많이 드세요. 호메시스를 자극하는 파이토케미칼이 많이 든 식물성식품에는 당연히 식이섬유도 듬뿍 들어 있습니다. 냉장고 사러 갔더니만 에어컨 컴퓨터까지 공짜로 끼워주는 격이죠.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은 호메시스에 효과적인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화학물질의 배출에도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운동할 때 오늘은 트레드밀에서 속도 얼마로 두고 몇 분 뛰었더니 몇 칼로리 소모했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움직임의 일상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복식호흡.. 이것이 핵심입니다
 
쓰고 보니 어떤 제목의 글을 쓰던지 제 글의 결론은 항상 식물성식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상적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맺게 되네요. 뻔히 아는 이야기 뭘 또 하고 또 하느냐고 지겨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만큼 제 맘이 간절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아 참! 주말에 책 2권을 사서 반쯤 읽다가 말았는데요.. 제목은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라는 책이었어요. 저도 음모론 굉장히 즐기는 사람이고 현재의 저를 키운 팔할은 기존의 지식과 상식을 믿지 않는 반사회적 기질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저자분은 가도 너무 많이 가셨더군요..  기본적으로 합성화학물질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와 백퍼센트 의견이 동일합니다만 저는 계속 참고 읽기가 좀 괴로웠어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 책에 대한 소감을 한번 올려보죠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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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선 13-06-04 17:28
 
이 덕희 교수님! 역시 멋지신데요!!^^
태클거는 방식이 논문이라니...식탁에 앉아서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교수님만의 고상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세상에 시비를 거셨네요. 생각만 해도 신났을 것 같습니다.^^

소개하신 책들에 대한 다음 글 기대됩니다.^^
설경도 13-06-05 06:08
 
이덕희교수님! 진솔하신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소개하신 책 내용이 궁금합니다. 기대되구요 감사합니다.^^
김주희 13-06-05 11:34
 
논문실태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의 명쾌하신 말씀애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파이토케미칼,식이섬유 운동 소식 모두다 홧팅!!!! 입니다.
늘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이의철 13-06-05 16:27
 
이덕희 교수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보시 2가지 책들... 저도 한 6개월 전에 동시에 주문해서 읽어봤습니다. 뭐 병원 혹은 한국의료의 실태에 대해 소비자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적고 있긴 하지만, '너무 많이 가셨다'라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의료판매학'이라는 책도 비슷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
상업주의를 비판하다가, 건강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까지 싸잡아서 내다 버리게 되는 격이라고 할까...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려버리는 듯....
그리고, 저역시 요즘 인류의 잡식성이 왜 현대, 그것도 자본주의, 더 최근에는 식품산업화 이후에 문제가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과연 '생태적 축산'은 가능한가? 생태적으로 풀을 기르고, 거기에서 가축들이 먹고 평화롭게 지내고... 그리고 그 가축들에서 유래하는 것들을 음식으로 먹고...
아마 지역에 따라 이것이 현실성이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반도와 동아시아쪽은 이런 것들이 대안이 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4천년의 농부'라는 책을 보시고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0년 전 동아시의 농업에 대해 미국인 학자가 쓴 책입니다. 100년전 이 땅의 농업, 서구의 농업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책인 것 같습니다.
     
이영선 13-06-08 13:23
 
4천 년의 농부, 재밌겠습니다.^^
장민호 13-06-05 16: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두가지 책 모두 읽었는데..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의철 국장님의 생각도 궁금하구요~~
상업주의를 비판하다가 건강관리의 핵심까지 싸잡아 버리게 되는 격에 대한
구체적인 글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 저자 옹호입장이 아니고 순수한 궁금증입니다 )
유영재 13-06-06 12:10
 
!!!!!!
이덕희 13-06-09 10:54
 
오호~ 다들 그 책 많이 보셨나 보군요. 그런데 어떤 책에 대하여 글을 쓸려면 최소한 그 책을 끝까지는 다 봐야 하는데 제가 그 책을 끝까지 참고 볼만큼 너그러운 인내심이 있는지 확신이 없네요^^

제가 바라고 원하는 현대의 의사상은 이런 거예요.  환자와의 상호신뢰와 이해를 통하여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는 의사"  칠 때는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기술을 맘껏 사용하고 빠질 때는 우리 몸이 가진 자연치유능력을 맘껏 사용하고.. 그냥 비현실적인 몽상가의 꿈일 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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