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이냐?
화학물질, 특히 POPs가 제 연구의 주된 주제가 된 후 연구자로써의 제 인생은 꽃이 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당뇨병 외에도 고지혈증,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류마티스성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치주염 등등 무수히 많은 질환과 POPs간의 관련성을 보고하면서 제가 쓴 POPs에 대한 일련의 논문들이 여기저기서 상당히 많은 주목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인간으로써 저의 인생은 자꾸 자꾸 황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POPs라는 화학물질을 가능한 한 피하면서 살고 싶은 저의 소박한 바램이었을 뿐이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겁니다.
가족을 위하여 아침을 준비하는데, 이것도 주면 안 될 것 같고, 저것도 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외식을 하기 위하여 식당을 찾아야 하는데, 이 집도 가면 안 될 것 같고, 저 집도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장을 보기 위하여 슈퍼마켓을 가면 살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치킨을 시켜먹는 것도 못마땅하고, 피자를 시켜 먹는 것도 못마땅하고, 우유 급식도 끊어야 할 것 같고, 학교 급식도 그만 먹여 할 것 같고.. 더 이상의 POPs노출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물성식품은 끊어주어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더군요.
드디어 온 가족들이 저한테 점점 더 불만을 가지고 거세게 항의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그야말로 가족들에게 사이코로 낙인찍히기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먹는 것은 원래 먹던대로 먹고 몸 안에 들어가 있는 POPs의 배출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POPs는 기본적으로는 지방조직에 축적되어 있지만 상당량의 POPs들이 지속적으로 소위 담즙과 함께 소화관으로 배출이 됩니다. 담즙은 간에서 만들어져서 담낭 안에 저장되어 있다가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지방을 소화시키기 위하여 담낭으로부터 소화관으로 나오죠. 그런데 이러한 담즙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enterohepatic circulation으로 인하여 다시 소장 끝에서 체내로 재흡수가 되는데 이 때 담즙과 같이 나온 POPs들이 함께 재흡수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즙과 함께 배출되는POPs의 양을 늘이고, 이들이 재흡수되지 않고 대변으로 빠져나오도록 하면 뭔가 얘기가 될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과 결합해서 나오는 약물개발을 먼저 상상해보았습니다. 임상에서 사용하는 약 중 bile acid-binding resin으로 분류되는cholestyramine 이라는 약이 실제로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담즙과 같이 나오는POPs배출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이런 약물을 사용한다면 결국 매일 평생 동안 먹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약물이란 것도 결국은 인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xenobiotics입니다.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일는지 몰라도 이건 아닌 것같이 생각되더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체의학 분야에서 사용한다는 해독이라는 것에 대하여, 자연의학이라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쪽 분야를 임상에서 직접 적용하는 임상가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더군요. 주로 한방쪽에서 해독클리닉을 표방한 한의원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제 배경이 한의학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로써 해독치료를 하는 분을 찾던 중.. 한 대형서점 건강서적코너에서 바로 현재 올생의 준비위원장님이신 김진목선생님이 쓰신 책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그냥 바로 전화 드리고 약속 잡아서 그 당시 부산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앞에 있던 파라다이스 해독클리닉을 찾아가서 처음 뵙게 되죠.
이게 바로 대구 사는 제가 부산 사는 김진목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경위입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제가 처음 파라다이스 해독클리닉 건물을 딱 보는 순간, 이거 잘못 왔구나 싶었어요.^^ 저는 이 해독이라는 치료가 가지는 기본 철학을 고려할 때 아주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의원을 상상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파라다이스호텔 면세점을 리모델링한 무지하게 luxurious한 의원이더라는 겁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점심도 얻어 먹고 좋은 시간을 가졌죠.
그 이후로도 해독치료를 하시는 분을 몇 분 더 만나 뵙기도 하고 했는데요. 이게 뭔가 뚜렷하게 이거다 싶은 생각은 그 때까지 들지가 않더군요. 여러 해독 치료 중 간청소와 장청소라는 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POPs물질 배출에 도움이 되는 것같이 생각되어 제 스스로 집에서 두어 번 해보기도 했습니다. 올리브유, 죽염, 마그밀 뭐 이런 걸 사용해서요.. 그럭 저럭 끝내기는 했는데 뒷 끝이 썩 개운하지는 않는 방법이더군요.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미친 척 하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방법을 일상적인 POPs배출에 사용하기는 힘들겠다 싶더군요.
Detoxification, nature medicine 쪽의 원서를 열 권쯤 아마존에서 구입하여 읽어보았습니다. 몇 권의 책을 잇달아 읽으면서 결국 우리 몸에 축적된 화학물질의 배출을 증가시키기 위한 어떤 기적 같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결국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은 역시 “음식”과 “운동”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동물성 식품을 피하고 식물성 식품을 먹는 것은 추가적인 화학물질의 노출을 피하는데도 중요하지만 우리 체내에 쌓여있는 화학물질을 제거하는데도 핵심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현미밥과 같이 통곡물의 섬유소는 매일 식사를 할 때마다 담즙과 함께 배출되는 POPs를 잡아서 대변으로 나오게 하는데 더 없이 좋은 방법이겠더군요. 이 방법은 다른 detoxification방법들과는 달리 부작용에 대한 어떠한 염려 없이 하루 3번, 매일,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채식에 대하여 공부를 또 좀 해보았습니다. 현미채식은 가능한 한 더 이상의 화학물질을 피하고, 체내에 있는 화학물질들을 배출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방법이지만 현미채식 그 자체가 가진 힘도 만만치가 않겠더군요. 풍부하고 다양한 항산화작용은 말할 것도 없고 항암작용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미국에서 40-50대에 우연히 자동차사고로 사망한 성인들의 유방과 전립선을 검사해보니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microscopic cancer를 가지고 있더라는 연구결과를 혹시 들어보셨나요? 갑상선의 경우에는 70대가 되면 거의 100%에 가까운 사람들이microscopic cancer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microscopic cancer가 그 상태로만 머문다면 평생을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이 cancer에서 소위 angiogenesis(신생혈관생성)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생하면 이 microscopic cancer로 산소와 영양소 공급이 시작되고 그 때부터 이 microscopic cancer의 크기가 급작스럽게 커지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 이러한 angiogenesis를 조절할 수 있는 신약개발이 새로운 항암제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구요.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들을 보니 매우 다양한 과일과 채소에 이러한angiogenesis를 조절할 수 있는 물질들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그 효과가 아주 뚜렷하더군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결국 현미채식이 답이 될 수 밖에 없더군요. 드디어! 이 칼럼의 제목이 나왔네요.^^
(To be continued)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