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동물성 식품 그 자체가 문제인가?
그럼, 오염되지 않은 동물성 식품도 해로울까? 이 질문을 꼭 한 번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이러한 동물성 식품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짐작컨대 저의 이런 의견은 동물성 식품자체가 해롭다고 생각하시는 다른 회원님들의 견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전적으로 침팬지와 매우 유사한 인간은 치아나 구강의 구조, 대장의 길이, 여러 가지 생화학적인 특성 들을 고려할 때, 침팬지와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를 했던지 하나님이 창조를 했던지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육식보다는 채식에 더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난 시점을 기원전 약 10만년 전 정도로 보고 있는데요,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난 시점은 소위 구석기시대 불의 발견이 된 후 수십만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시점입니다 불의 발견이라는 것이 인류학적으로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는 충분히 짐작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인간이 현재와 같은 육식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수십만년 기간동안 인간의 유전자는 육식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유전자는 지속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2002년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던 몇몇 원시부족들이 20세기 중반까지 가지고 있었던 전통식습관에 대하여 조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Cordain L, et al. The paradoxical nature of hunter-gatherer diets: meat-based, yet non-atherogenic. Eur J Clin Nutr. 2002;56:S42-52). 이러한 부족들은 전통적인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위 사회가 서구화가 되면서 발생이 증가하는 동맥경화를 비롯하여 만성퇴행성질환이 매우 드물다고 잘 알려져 있는 그런 부족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현재는 이런 부족들에서도 소위 만성퇴행성질환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 원시부족들에서 주된 에너지섭취원이 동물성지방과 단백질인 경우가 매우 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부족이 에스키모부족, 아프리카의 마사이부족 등이죠. 이들은 에너지의 거의 80-90%를 동물성지방과 단백질에서 얻고 있는 부족입니다. 이들은 대대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동물성 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물성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가능할 경우 날 것도 마다하지 않죠. 이 연구결과는 동물성식품 자체가 문제가 있지는 않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현재 우리는 심장병이 서구국가에서 매우 흔한 질병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미국에서조차 1930~40년대 이전에는 심장병이 매우 드문 질환이었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심장마비를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심장전문가 폴 더들리 화이트 박사는 1911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했었는데 본인이 의과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heart attack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으며 1912년에는 JAMA에 단지 4명의 심장병환자 case가 일종의 case report 형태로 실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드물었던 심장병이 왜 1940년대를 지나면서 서구지역에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을까요? 그 나라 사람들이 그 전에는 주로 채식을 했었고 그 이후에는 육식을 주로 해서 그럴까요?
동물성 식품, 특히 동물성 포화지방에 대하여 문제가 제기된 주요한 초기 연구 중 하나가 앞선 제 글 중 정인권선생님의 댓글에서 언급된 미네소타대학의 Ancel Key교수의 Seven Countries Study입니다. 이 연구는 2차대전 이후에 수행이 되었는데요, 심장질환 사망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일인당 동물성지방 섭취량이 많다는 것을 보고하여 동물성 지방, 혈중 콜레스테롤, 심장질환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패러다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죠.
그러나 저는 이 패러다임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패러다임에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연구자들이 매우 드물지만 좀 있죠.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은 외부의 음식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인체 내부의 필요에 의하여 생산되는 양이 20:80정도로 훨씬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연구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음식을 통하여 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외부에서 들어오는 어떤 화학물질이 인체 내부의 필요에 의하여 정교하게 조절되어야 하는 콜레스테롤의 내부 생산시스템에 교란을 야기하면 그 때는 문제가 훨씬 심각해 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POPs물질들은 혈액 내에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질에 결합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즉, POPs와 같은 화학물질은 주로 동물성식품과 같이 섭취되는 경향이 있으며 체내로 들어왔을 때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질의 생산 조절시스템을 교란시킬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질과 함께 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보기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동물성 지방 그 자체가 문제일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그 지방을 오염시키고 있는 POPs와 같은 화학물질이 결국 이 모든 현상의 보다 궁극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현대 문명의 이름으로 지구의 환경이 화학물질의 범벅이 되고 공장형 축산업이 우리가 소비하는 동물성 식품을 제공하는 일차 경로가 된 이 시점에 식물성 식품보다는 동물성 식품이 이러한 화학물질을 축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그리고 화학물질에 오염이 되지 않은 동물성 식품을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동물성 식품을 피하는 것이 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의 개인적인 우려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비록 육식을 피하고 현미채식을 해야 한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만약 올생의에서 동물성 식품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접근하시면 외부에서 반격을 받게 될 여지가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o be continued)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