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마지막 글
본인이 아직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미채식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가족을 통하여서도 경험하였고, 저 자신도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 칼럼을 쓰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가끔 먹자골목 지날 때 나는 맛있는 갈비 굽는 냄새에 군침을 삼키고, 특별한 반찬이 없을 때 만드는 계란프라이의 간편함과 깔끔함을 사랑하며, 잘 구워진 토스트와 함께 놓여진 우유, 치즈, 버터가 가진 풍미에 마구 행복해지는 사람입니다.
고백하건대 전 아직 현미채식을 저의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단 환자가 된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르더군요. 많은 환자들은 본인의 식습관을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고 종종 담당의사에게 의견을 구하곤 합니다. 실제로 MBC에서 목숨걸고 편식하는 사람들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난 후, 적지 않은 수의 임상선생님들이 환자들로부터 현미채식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은 “골고루 잘 먹는 것”이 “현미채식”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먹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계신 의사분들도 음식을 그 자체가 아닌, 주로 영양소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환원주의론적 서양의 식품영양학이 만들어 놓은 그 틀을 못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영양소가 많은 음식이면 뭘 하겠습니까? 화학물질에 완전히 오염이 되어있다면..
만약 GGT에 대한 연구결과가 시사하듯이 당뇨병을 포함한 여러 만성퇴행성질환의 주범이 정말 수많은 저농도 화학물질에 대한 장기적 노출때문이라면, 이러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어떠한 환상적인 최신의 현대의학적 치료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그와 동시에 이러한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체내에 존재하는 이러한 화학물질의 배출을 증가시켜주는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미채식”이 사회에 일차적으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하여 사회구성원들 중 의료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일반인들은 잠시 뒤로 물려두고 최소한 스스로 바꿀 의사를 가지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바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격려하면서, 그리고 그 변화가 가져오는 우리 몸의 변화를 같이 지켜보는 것.. 이렇게 환자들로부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결국 준비가 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까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오지랍 넓게 이 나라 농업 걱정까지 하게 되더군요. 우리나라의식량자급률이 매우 낮으며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서 오는 먹거리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제 아무리 식물성 식품이라고 해도 배타고 물건너 온 것들은 이미 생명으로써의 가치를 예전에 상실해 버린, 그리고 인위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처리한 각종 화학제품들 때문에 동물성 식품에 비하여 나은 것이 하나도 없을 겁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아직 유기염소계 농약을 농업에 음성적으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결국은 지역 농업을 활성화시키고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제철 먹거리를 생산하여 신선할 때 근교의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 제약회사 몇 개 설립하는 것보다 국민 건강에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그렇게 살듯이, 자신의 삶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에서 햇빛과 공기와 토양의 힘으로 자라는 “또 다른 생명체들”을 가능한 한 가장 생명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 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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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에서 본 연재글을 마칠까 합니다. 시작할 때 10년 동안 사건기록이니 10편은 써야 끝나지 않을까 싶었더니만 정말 10편까지 쓰게 되었네요.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는데도 글로 풀어 적다 보니, 아주 오래된 옛 일같이 생각되기도 하고 그 시절의 열정이 무지하게 그립기도 했습니다.
언뜻 보시기에는 결론이 다 난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깊이 파고 들면 들수록 아직 답을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몇 년 후에 아, 내가 그 때 잘못 생각했었구나 하는 부분이 생길지도 모르죠. 연구자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연구하고 논문쓰는 것이 시들해졌어요.. 제가 10년 동안 정말 미친듯이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쓴 이유는 단순히 논문을 쓰기 위하여서가 아니었고 정말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거든요. 이제 답을 대충이라도 알았다 싶으니까, 그리고 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 있겠구나 라는 것을 느끼고 나니 더 이상 연구하기가 싫어지더군요. 이 참에 환경운동가로 나서 볼까? 채식운동가로 나서 볼까? 좀 고민 중입니다.^^
이렇게 설렁설렁 살다가.. 어디에선가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뭔가를 발견하게 된다면 또 다시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겠죠^^.
그 동안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 글이 현미채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많은 다른 임상 선생님들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약간의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다면, 저는 정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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