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의 Nakadori병원의 소화기 내과 팀에서 World Journal of Gastroenterology 2010년 5월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소개드릴까 합니다. 이 연구팀에서는 크론씨병의 재발을 예방하는데 현미채식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를 2년 동안 전향적으로 연구를 했군요. 크론씨병이 당뇨병이나 고혈압같이 흔한 병도 아니고 본 연구가 무작위배정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연구라고 판단되어 선택했는데요, 어떠한 시사점인지는 마지막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론씨병(Crohn’s disease)은 궤양성대장염(Ulcerative Colitis)과 함께 장에 심각한 염증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위험요인들이 관여할 것이라고 추정만 될 뿐 정확한 원인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죠. 증상의 심각도 정도는 매우 다양한데 약물을 복용하여 염증반응이 줄어들면 증상이 호전되지만, 자주 재발하기 때문에 재발이 특히 문제인 질병입니다. 원래 서구국가에 많은 질병이었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발생률의 뚜렷한 증가를 보이고 있구요. 참고로 크론씨병이 있는 사람은 나중에 여러 가지 암이 발생할 위험이 높습니다.
그런데 크론씨병환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을 보니 영양공급이 매우 중요하므로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야 하고 장을 자극하면 안 되니 너무 “섬유소가 많은 채소, 과일, 해조류를 피하라”고 되어있네요. 즉, 기존의 의학상식으로 볼 때 소위 “현미채식 절대로 하지 마라”과에 속하는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당뇨병이나 고혈압에 현미채식을 권하는 것에 비하여 이런 병에 현미채식을 권하는 것은 정말 의사들에게는 면허증 걸어놓고 하는 결정이겠습니다. 저같이 소심한 사람이 환자를 본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거구요.
이 연구자들이 크론씨병에 현미채식이 좋을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장내박테리아 분포가 장의 염증반응에 매우 중요한데,현미채식이 장내박테리아 분포를 염증반응을 낮추는 쪽으로 바꿈으로써 궁극적으로 크론씨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논문서론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크론씨병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의사들이 권유하는 식이요법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현미채식을 크론씨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적용시켜 봅니다. 참고로 현미채식과 장내박테리아, 이거 POPs와 같이 엮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요,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 글을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는 완전현미채식을 하도록 한 것도 아니고 반현미채식을 사용했습니다. 현미는 반드시 매끼니마다 먹도록 했지만 전혀 고기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은 생선을, 이주일에 한번은 육류를 먹을 수 있도록 했고 계란과 우유는 금지를 하지 않았네요. 그러니까 일종의 lacto-ovo-vegatarian이면서 육류를 드물게 먹은 경우입니다. 완전 현미채식만 하게 하면 환자들이 장기간 잘 따라오기가 힘들까봐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연구결과입니다. 반현미채식을 권유받은 22명중 6명은 중간에 탈락되고 16명만 2년까지 추적관찰이 가능했는데 그 중 단 1명만이2년 동안 크론씨병이 재발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동물성식품과 식물성식품을 가리지 않고 섭취한 6명중에서는 4명이 2년 동안 크론씨병이 재발했구요.. 아래 생존분석곡선을 보시면 아주 뚜렷한 차이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CRP치도 반현미채식을 한 군에서는 절반이상에서 정상치로 돌아왔네요. 완전현미채식도 아니고 반현미채식에서 이 정도의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비록 크론씨병이 다른 흔한 만성병에 비하면 드문 질환이긴 하지만 이 연구가 시사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기존 의학계에서도 통곡물과 식물성식품 섭취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병과는 달리 크론씨병은 정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크론씨병을 가진 환자들에게는 보통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야 하고 섬유소가 많은 채소, 과일, 해조류를 피하라고 교육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질병의 경우 소위 과학적인 검정의 최고봉이라고 보통 믿고 있는 RCT를 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아마 RCT를 시작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과정인 IRB(연구윤리위원회)통과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군요. 환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비윤리적 연구로 낙인찍혀서요..
본 연구에서 실제로 환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니 기존의 상식과는 매우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아마 이 연구 결과를 보여줘도 어떤 의사들은 “다른 말 필요 없다. RCT로 보여다오”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약과는 다르게 이러한 식이습관이라는 것은 RCT의 결과가 나오기만을 고집하면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임상결과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반적으로 의사 개인이 경험한 몇 명의 증례에 대한 결과는 대조군이 없는 사례보고수준이므로 그 타당성을 믿을 수 없다고 폄하되고 있지만 이러한 식이습관과 관련된 연구의 경우, 비록 RCT가 아니더라도 현미채식을 임상에서 적용하고 효과를 보고하는 임상가들의 개인적인 경험도 일정수준 귀중한 가이드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Evidence-based 현미채식 2010/12/29 09:50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