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에덴요양병원의 현미감자밥>
제가 POPs때문에 현미채식에 관심을 가지고 난 다음, 황성수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여러 번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첫 만남은 저희 학교의 다른 교수님 소개로 대구에 있는 한 채식전문식당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만났었는데요, 저는 그래도 모교 선배님하고의 나름 첫 만남이라고 난생 처음 맞선 보는 노처녀모양 어울리지도 않는 화장으로 면상에 낙서를 하고 나타났는데, 황성수선생님은 영락없는 농부의 당당한 포스로 자전거를 끌고 오신 그 모습이 얼마나 신선하든지..^^
그 당시는 아직 황성수선생님이 본격적으로 메스컴을 타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자를 보시는지에 대하여서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저 혼자 POPs얘기만 잔뜩 떠들고 헤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 유명해지시면서 이런 저런 일들로 계속 만남을 가졌었는데 그 때마다 하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본인이 진료하는 환자들 중 가장 흥미로운 case가 바로 만성신부전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성신부전환자에게 엄격한 식이요법은 필수 중 필수로 되어 있습니다. 신장기능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수분과 염분을 제한하며 인을 제한하고, 칼륨을 제한합니다. 또한 단백질의 절대량을 제한해야 하기 때문에 섭취할 때는 통상적으로 양질의 단백질로 굳게 믿고 있는 고기, 생선, 달걀, 우유와 같은 동물성식품으로 해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미채식을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흔한 질환이 만성신부전환자들입니다.
먼저 현미와 잡곡에는 흰쌀밥보다 인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보통 만성신부전환자들은 신장에서 인을 배출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혈중 인농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 몸에서는 가능한 한 인의 배설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부갑상선호르몬을 증가시키는 기전이 작동되게 됩니다. 부갑상선호르몬이 지속적으로 증가되면 뼈가 약해지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인이 많이 들어있는 현미와 잡곡을 먹으면 안 되고 흰 쌀밥을 먹도록 교육하고 있죠. 과일이나 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식품에는 상대적으로 칼륨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만성신부전환자들이 이러한 식품을 먹기 위하여서는 껍질이 있으면 껍질은 제거하고 삶아서 물은 버리고 건더기만 먹으라고 하죠. 당뇨병환자들이 합병증으로 만성신부전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뇨병일 때에는 잡곡밥, 신선한 과일과 채소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다가 만성신부전환자가 되면 그 때부터는 완전히 정반대의 식습관을 가져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성신부전환자에서도 현미채식이 더 유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드물지만 보고되고 있네요.오늘은 미국 인디아나 대학의 내과팀이 Clin J Am Soc Nephrol에 최근 보고한 연구결과를 소개드리겠습니다 (1).본 연구는 평균 GFR(glomerular filtration rate: 사구체여과율)이 25~40ml/min이면서 아직까지는 혈중 인농도를 정상범위내인 9명의 만성신부전환자 (만성신부전 3, 4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를 대상으로 소위 crossover trial을 한 연구입니다.
Crossover trial이란 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의 한 종류로써 동일한 환자들에게 한번은 현미채식을 7일간 제공하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 다른 한번은 육식을 7일간 제공하여 어떠한 음식섭취가 환자의 인 대사에 더 도움이 되는지를 평가합니다. 이 때 현미채식을 하던 육식을 하던 source만 다를 뿐 하루에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 지방/탄수화물/단백질 양, 인섭취량 (800mg/일)등은 동일하게 맞추게 됩니다. 보통 RCT로 이런 연구를 하게 되면 환자군을 무작위로 두 군으로 나누어 한 군은 현미채식을 하게 하고 다른 군은 육식을 하게 하여 비교를 하죠. 이러한 통상적인 RCT에 비하여 crossover tial을 하게 되면 환자개인차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없앨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장점이 있죠. 동일인에게서 현미채식을 할 때의 효과와 육식을 할 때의 효과를 비교하는 것이니까요.
결과입니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인의 절대량은 동일하더라도 육식의 경우 전후에 혈중 인농도가 거의 차이가 없는데 현미채식을 하고 나니 혈중 인농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떨어지네요 (표 2). 단 1주일을 했을 뿐인데요.. 특히 혈중 FGF23(fibroblast growth factor-23)이 육식을 했을 때는 증가하는데 현미채식 후에는 오히려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FGF23은 osteroblast와 osteocyte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인과 비타민 D대사에 밀접하게 관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FGF23이 증가하면 소변내로 인 배출은 증가하는데 신장에서 비타민 D합성이 감소하게 됩니다. 우리 인체에서 비타민 D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시는 분은 아실 것 같은데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또 드리고.. 어쨌든 FGF23은 최근 임상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투석환자에서 초기의 FGF23치는 향후 사망률을 매우 강력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2008년 그 유명한 NEJM에 보고된 바 있습니다 (2). 그렇게 중요한FGF23치가 현미채식을 1주일을 하고 나니.. 그냥 떨어지더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동일한 양의 인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현미채식이냐? 육식이냐?에 따라서 만성신장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체내 인대사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현미채식에 많이 포함된 phytate가 인의 체내흡수를 방해하기도 할거구요. 단순히 인체의 혈중 인 농도가 높으니까 인이 많이 든 이런 저런 음식을 먹지말라고 권고하는 것.. 단순히 인체의 혈중 칼륨 농도가 높으니까 칼륨이 많이 든 이런 저런 음식을 먹지말라고 권고하는 것.. 이런 단세포적인 접근방법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저한테 이야기할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다세포과라는 당신이 한 번 RCT를 멋지게 해서 만성신부전환자들에서 현미채식을 하면 더 낫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단세포과인 나한테 한번 보여줘 봐~ ㅋㅋ 그래도 인쯤이나 되니 이렇게 감히 RCT해볼 생각이나 하지, 칼륨에 초점이 맞춰지면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감히 RCT를 해볼 엄두도 못 내겠죠. 고칼륨혈증이 되면 심장마비가 온다고 경고를 때리고 있으니까요.. 갑자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범 무서워 산에 못 갈까.. 빈대 잡을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뭐.. 이런 “비과학적인” 속담들만 주루룩 머리 속에 떠오르네요 ^^.
신장은 간과 함께 우리 몸의 노폐물을 처리하는 주된 기관이죠. 노폐물이라고 언뜻 우리 몸에서 정상적인 대사 후 발생하는 물질만을 생각할 수 있으나 외부에서 오는 xenobiotics들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주된 기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신장입니다. 따라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xenobiotics의 양을 줄여주고 체내배출을 촉진시켜주는 현미채식의 의미는 만성신부전 환자라고 크게 다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질환의 경과 정도에 따라서 현미채식을 하더라도 급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관찰할 필요는 당연히 있을 거구요. 만성신부전은 질병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환자의 증가속도, 이 질병으로 인한 사회경제학적인 부담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질병으로 생각되어 앞으로 시간이 나면 한 번 더 다뤄볼 계획입니다.
참고문헌
1. Moe SM, Zidehsarai MP, Chambers MA, Jackman LA, Radcliffe JS, Trevino LL, Donahue SE, Asplin JR. Vegetarian Compared with Meat Dietary Protein Source and Phosphorus Homeostasis in Chronic Kidney Disease. Clin J Am Soc Nephrol. 2010 Dec 23. [Epub ahead of print]
2. Gutierrez OM, et al. Fibroblast growth factor 23 and mortality among patients undergoing hemodialysis. NEJM 2008;359:584-92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