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읽고 나면 누구나 현 시점에 가장 시급한 연구주제란 바로 작은 크기의 암을 가진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진행되고 어떤 사람은 진행되지 않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겁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한둘이 아니니 곧 이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역시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사전결정된 인자에 의한 일방통행이 아니고 매우 dynamic한 상황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지금 상황에서는 진행할 것 같다가.. 암을 둘러싼 주위 환경이 좀 바뀌면 진행하지 않을 것 같다가.. 이렇게 계속 오락가락 하면 실제로 사람에게 신뢰성있게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개발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제 살아생전 가능할런지 한번 기다려보죠..
또한 아주 작은 크기의 암들은 수명이 증가하면서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 밖에 없는 현상일 가능성이 큰데요.. 암억제유전자로 유명한 p53라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모든 암의 약 절반 정도에서는 p53 이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고되구요. 즉, 이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암으로 자라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데 암환자의 경우 이 유전자가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더라는 의미죠. 연구자들이 p53와 같은 암억제 유전자를 정상화시키는 신약을 개발하여 암을 정복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지 한참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생체내 분자들이 어떤 기전으로 p53를 조절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머리깨지도록 연구하고 있구요 이걸 완벽하게 이해해야 부작용없이 p53유전자를 더욱 더 환상적으로 조절하는 신약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거죠.. 그러나 최근 p53가 암과는 별도로 노화현상의 조절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가고 있는데요.. 실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실험조건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노화가 앞당겨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고 완전 정반대의 현상을 보입니다만 사람에서의 연구결과를 보면 p53유전자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암으로 사망할 위험은 낮추나 대신 다른 질병으로 사망할 위험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1). 즉, 인체내에서 암과 노화라는 이 두 가지 현상은 분리할 수 없는 샴 쌍둥이고 하나를 받으면 다른 하나는 줘야 하는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죠 (2).
자~ 현실은 그렇구요.. 그렇다면 당장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답은 없습니다. 대단한 비법을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너무 김빠지는 이야기인가요?^^ 뭔가 이상이 느껴지면 가능한 한 빨리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뭐가 만져지고 어떤 증상이 있다면 사실 이건 조기진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죠.. 문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도 조기진단을 받기 위하여 뭔가를 해야만 하는가?인데요… 누가 뭐래도 본인이 하고 싶다면 해야 합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역시 하는 것이 바람직하구요. 그리고 암종류에 따라서 소위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신경쓰기 귀챦으면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는 괜챦은 단골의사를 평소에 만들어 두시고 이 의사의 조언을 따르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겠죠. 그리고.. 나이 많으신 분들은 모르는 게 약이 될 가능성이 크고 저 같은 사람은… 뭐 살던 대로 살다 죽는 거구요..^^
하지만 최소한 지금과 같이 전국가적인 차원에서 암조기진단과 조기치료만이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선이라는 전제하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르면 몰라도 일단 알게 되면 아무리 작은 암이라도 그냥 지켜볼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겁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켜보고자 했다가 갑자기 진행되면 아주 곤란해지니까요.. 현실에서 암검진이 가진 딜레마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더 작은 크기의 암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인간이 가지게 되면 가질수록 그 딜레마는 겉잡을 수 없이 더 커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빠트리면 섭섭한 이야기가 있죠. 암검진은 그렇다 치고, 여러분들이 이미 그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계시는 생활습관들.. 즉 식물성식품안에만 든 파이토케미컬들, 운동, 소식 등은 우리 몸 곳곳에 숨어있는 아주 작은 암덩어리들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하면 전문성과 과학성이 결여된 개인적 견해로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이러한 생활습관은 미토콘드리아를 매개체로 하여 앞서 이야기한 신생혈관이니 p53유전자 조절이니 하는 것들과 모두 다 분자생물학적인 기전으로 아주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죠.
다만 이러한 기전들의 완벽한 이해를 통하여 이 기전에 우리가 직접 개입하여 조절해보겠다는 망상은 언감생심 가지지 않고 우리는 외부에서 적절한 자극만을 우리 세포에 전해줄 뿐이고 궁극적인 일은 세포가 다 알아서 하도록 놔둔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실 저는 이 정도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더 이상의 정교한 개입은 실험실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이라고 당연히 100%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암발생률이 낮다는 것은 이미 아주 잘 알려져 있죠. 저는 이러한 생활습관들이 암세포의 발생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암들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여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암이 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100%라는 것은 없는 세계입니다. 확률적으로 낮은 방법이 불확실성의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일 수밖에는 없죠. 평소 빨주노초파남보 과일과 야채를 충분히 드시지 않고, 움직이는 걸 귀챦아 하고, 식사 늘 허리띠 풀어가면서 하시고, 하루 왼 종일 스트레스에 쌓여있으면 우리 몸 곳곳에 숨어있던 0.01mm, 0.1mm의 암들이 서서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제 필생의 연구주제인 POPs와 같은 화학물질도 역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보통 화학물질들을 두고 평가할 때 직접 유전자를 공격하여 유전자변이를 초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화학물질들은 강력한 발암물질로 보지만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화학물질들은 상대적으로 발암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변이는 외부의 발암물질이 없어도 우리 인체내에서 계속 발생하는 현상이며 인체 내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러한 돌연변이가 일어난 세포들이 계속 번식하고 자라게 해주는 토양을 제공하는 화학물질들입니다. 씨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밭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콜린 켐벨은 동물성단백질이 이러한 밭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만…솔직히 말해서 이건 잘 모르겠어요.. 감히 베지닥터에서 콜린 켐벨의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쓰기는 상당히 조심스럽긴 한데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내서 따로 한 번 하구요..
진짜 마지막으로, 혹시 몇 해전에 국립암센터에서 홍서범, 조갑경 커플이 나오는 공익광고를 만들어 한참동안 공중파에서 방송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저는 이 광고를 보고 아주 어이가 없었는데요.. 그 공익광고에서는 암조기검진을 홍보하기 위하여 운동하기, 좋은 음식 먹기와 같은 일들을 대놓고 폄하합니다. 아무리 운동 열심히 하고 좋은 음식 먹어봐야 암검진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게 그 광고의 핵심메세지입니다. 열받았죠.. 피 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광고를 만들어서 공중파방송에 밤낮으로 틀어대다니.. 뭐.. 이거 아니래도 작금의 언론매체는 안 듣고 안 읽고 안 보는 것이 건강한 정신세계를 지키는 길이자 암세포들의 번식을 억제하는 지름길입니다만…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덕희
참고문헌
Heemst et al. Variation in the human TP53 gene affects old age survival and cancer mortality. Exp Gerontol 2005;40:11-15
Campisi J. Cancer and ageing: rival demons? Nature Reviews Cancer 2003;3:339-3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