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지닥터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언제 이 이야기를 올릴까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현재 쓰고 있는 논문이 저널에 실리면 이를 참고문헌삼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볼려고 했는데 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요즘 갑자기 베지닥터가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혹시나 베지닥터에 올라온 글을 보고 현미채식을 시작할지도 모를 환자들을 생각하면요. 현재 알려져 있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문제제기는 가능할 것 같아서 일단 글을 올립니다. 반론 언제든지 welcome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패러독스라는 말로 불리는 현상들이 종종 있습니다. 소위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그런 현상을 우리는 패러독스라는 말로 부르는데요 건강과 관련되어서도 잘 알려진 패러독스가 몇 가지 있죠. 제일 잘 알려진 것이 소위 French paradox라고 프랑스인들이 다른 유럽국가 사람들보다 동물성 지방은 상대적으로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관상동맥질환 발생률은 오히려 낮은 현상을 두고 이렇게 부르는데요, 이 이유를 프랑스인들이 식사와 함께 늘 먹는 와인에서 찾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와인소비량 증가에 상당히 기여를 했다고 하죠. French paradox만큼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나 의사들 사이에는 비교적 잘 알려진 paradox로 obesity paradox라는 것이 있습니다 (1-3).
비만인구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비만한 사람일수록 당뇨병,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각종 암 등등 아주 다양한 질환의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지구상에서 웬만큼 살만한 국가들에서 어떻게 하면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가 국가적으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건강관련 아젠다가 되고 있습니다. 즉, 비만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공공의 적 쯤으로 간주되고 있는데요....
그런데 매우 이상하게도 일단 환자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예후를 보면 뚱뚱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좋습니다. 즉, 뚱뚱한 환자들이 정상체중이나 마른 사람들보다 더욱 더 오래 산다는 거죠. 뚱뚱한 사람들이 각종 병은 잘 걸리는데 일단 걸리면 더 오래 산다?? 이러한 현상을 바로 obesity paradox라고 부릅니다. Obesity paradox는 관상동맥질환, 만성심부전, 말초혈액질환, 만성신장질환, 혈액투석, 고혈압, 만성폐질환, 암, AIDS 등등 아주 다양한 질환에서 폭넓게 관찰이 되며 특별한 질병이 없더라도 나이가 많은 노인들에게도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기전들이 제시되고 있긴 하나 아직 그 이유에 대하여서 명쾌한 설명을 하지는 못하고 있구요.
그리고 체중변화와 관련되어서도 이해 못 할 현상들이 있는데요, 성인이 되어서 체중이 빠지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제일 높고 조금씩 체중이 증가하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제일 낮은 그런 현상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4,5). 보통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로 원래 병이 있는 사람들은 병이 진행하면서 저절로 체중이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이 체중감소 군에 대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점을 고려해서 분석해봐도 체중감소 군에서 사망률이 더 높다는 보고가 있죠. 그리고 백 번 양보해서 체중이 줄어드는 사람에게서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체중이 서서히 증가하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왜 높아지지 않는지 혹은 심지어 낮은지에 대하여서는 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비만과 관련하여 이해 못 할 현상들은 POPs와 같은 지용성 화학물질의 관점에서 보면 해석이 어느정도 가능합니다. 지용성 화학물질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 비만조직의 증가는 진화론적으로 adaptation과정일 수 있습니다. 생존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거죠. POPs와 같은 화학물질이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반감기가 수 년에서 수십 년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 몸 어디선가에는 이들 화학물질이 머물 곳이 있어주어야 하는데요, 다른 주요한 장기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가장 우리 몸에 피해를 작게 주는 장기가 지방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조직은 원래 지방을 저장하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장기이니까요.
그러면 지방조직에 POPs가 이미 상당량 저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방조직의 양이 줄어들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그럴 경우 지방조직의 양이 줄면서 그 동안 지방조직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저장되어 있었던 화학물질들이 있을 곳이 부족해서 혈액 내로 흘러나와서 혈중의 POPs농도들이 높아지게 되고 이는 결국 우리 몸 속의 여러 주요한 장기로 가는 POPs의 양이 증가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6). 즉 살을 빼게 되면 지방조직의 양이 줄어들면서 기대할 수 있는 장점과 동시에 혈중 POPs농도가 증가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살이 찌게 되면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하게 되구요 (6).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장점과 단점을 다 포괄적으로 고려한 net benefit의 개념으로 살빼기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특별한 질병이 없는 사람들이나 질병이 있더라도 초기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지방조직의 양이 줄어들면서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미채식이 현재 다이어트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는데요, 젊은 사람들 혹은 질병이 없는 사람들의 다이어트 방법으로 “걷기 운동과 함께 하는 현미채식”만큼 좋은 다이어트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성질병이 있는 환자들, 특히 나이가 많은 환자들은 일부러 체중을 줄였을 때 기대할 수 있는 net benefit는 기대만큼 그렇게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대부분 만성병 환자들은 노인환자들이죠. 이런 환자들이 갑자기 현미채식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섭취하는 총 칼로리가 줄어들면서 체중감소가 흔하게 발생합니다. 일단 체중감소가 발생하면 지질, 혈당, 혈압같이 쉽게 임상에서 측정하는 지표들은 호전되는 쪽으로 잡히기 때문에 당장은 만족하실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쉽게 측정하지 못하는 다른 negative effect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비만한 환자들이 체중을 줄여야만 한다면 동물성식품을 허용하면서 단순히 총칼로리만 줄이는 다른 다이어트 방법에 비하여 현미채식으로 체중을 줄이게 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더 이상의 POPs를 차단하고 줄어든 지방조직에서 흘러나온 POPs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체외로 배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나은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성질환자들, 특히 노인층 환자들이 현미채식을 할 때는 체중감소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하기 위하여 견과류를 포함한 식물성 지방이 풍부한 식품을 많이 섭취하도록 하여 전체 섭취 칼로리양을 줄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net benefit가 커지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