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배신을 읽은 나름의 짧은 소감
얼마 전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시사인이라는 잡지의 기사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이 “육식은 끔찍한 일인가? 채식 논쟁의 발발”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이 기사를 읽고 내가 가진 첫 번째 느낌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기사와 크게 오버랩이 되는 우리 큰 놈의 얼굴이었다. 그 이유는 마지막에..
바로 다음 날 책을 구입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바빠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가 어제 저녁부터 내리 달아서 오늘저녁까지 읽어버렸고 이런 논쟁적인 글을 본 다음의 당연한 생체반응으로 나도 뭔가를 좀 적어야겠다는 욕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올렸던 제 글들과 그 댓글을 통하여 이루어진 논쟁을 읽으신 분들은 익히 잘 알겠지만 나는 절반쯤은 채식의 배신이라는 저자의 편에 속해있는 사람이며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사례들도 베지닥터에 올렸던 글들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인류진화와 생존의 역사를 보았을 때 나는 인간은 동물성 식품을 먹도록 진화해왔다는 쪽에 서있다.
나는 동물성 식품 안에 든 포화지방 그 자체가, 동물성 단백질 그 자체가 암을 일으키고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한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진화 과정 중에 경험하였던 그 때 그 시절의 동물성식품을 먹고 살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와 나는 한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베지닥터의 회원이며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현미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음식의 진실이라는 것은 결코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이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1)그 식품 안에 포함된, 특히 먹이사슬을 통하여 농축되는 다양한 화학물질의 유해성여부와
(2)그 식품 자체에 얼마나 이러한 화학물질에 대처할 수 있을만한 능력이 있는가의 관점이다.
이러한 화학물질의 본격적인 생산과 사용은 20세기, 특히 20세기 후반 약 50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지금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뒤집어보면서 그 때 그 시절 그 음식을 먹고 산 인류가 이렇고 저러했으니 우리도 이렇고 저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음식을 가지고 우리는 판단해야만 한다.
이 책은 도덕적 이유, 정치적 이유, 영양학적 이유를 나누어서 채식주의자가 가지고 있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도덕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는 잠시 접어두자. 나는 원래 그리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고 요즘은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울렁증이 느껴지는 불안정한 심리상태이므로.. 따라서 영양학적인 이유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자면 동의하는 부분 절반, 동의할 수 없는 부분 절반이다.
동물성지방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관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만큼이나 혹은 더 심각하게 공장식 농업의 폐해가 존재한다는 저자의 시각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실 공장식 농업이 바로 공장식 축산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단일품종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기반으로 재배되는 막대한 옥수수, 밀, 콩이 없었으면 애초에 공장식 축산업이라는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러한 공장식 농업을 통하여 재배되는 식물성식품을 이용하여 공장에서 만들어낸 각종 가공식품들이 해롭다는 것도 말이 필요없다.
여기에는 당연히 콩으로 만든 조제분유, 콩고기를 포함한 각종 콩가공식품도 다 포함된다. 특히나 이러한 쓰레기 가공식품에 비타민 무기질 범벅으로 “처”발라놓고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둔갑시키는 현대 식품산업의 기만성을 혐오한다는 점에서도 100% 나와 의견이 동일하다. 음..이렇게 적고보니 현대사회의 모든 불량먹거리의 원죄가 농업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갑자기 나도 들기 시작하지만.. 말은 똑바로 하자. 문제는 “공장식 농업”이다.. 사실 저자가 가진 농업에 대한 적대감은 대부분 “공장식 농업”에 대한 것이다.
이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으로 넘어가보자.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몇 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저자는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만년전 정도로 극히 최근의 일이며 그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을 해왔기 때문에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곡물류에 적응되지 못하였다고 보고 있다. 당연히 만년은 십만년보다는 짧고 백만년보다는 짧다. 그러나 만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다. 인간 번식주기를 20년으로 본다면 500세대가 번식가능하였고 500세대면 진화론적으로 충분히 적응가능한 세월로 보는 것이 맞다. 곡류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은 2세를 나을 때까지 생존할 가능성이 작으며 곡류에 잘 적응한 인간들은 2세를 낳고 3세를 낳고 그렇게 500세대를 번식하게 된다.
더불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모든 곡물류를 동일한 탄수화물식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복합탄수화물이든 단순당이든 모두 당분자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므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은 너무 일차원적이라서 읽는 순간 당혹감까지 느껴졌다.
저자 마음속에 농업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나 가득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까지 나왔을 것 같은데 이러한 관점은 김태희와 나를 분자수준으로 분해하면 나오는 최종산물이 C, H, O 등으로 똑같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이 사회에서 효용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와 똑같다. 내가 김태희같이 생겨먹었으면 이 나이까지 살면서 겪었던 고초의 99%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복합탄수화물은 결코 단순당과 동일하지 않다. 복합탄수화물은 저자가 책에 기술한 단순당이 야기하는 건강상 문제의 99%를 피해갈 수 있으며 단순당이 공장에서 수백 번 둔갑을 해도 결코 주지 못할 많은 건강상 유익함이 있다.
저자의 주장 중 또 하나의 중요한 오류는 식물성식품에 포함된 섬유소는 사람이 소화시킬 수 없는 성분이므로 아무 쓸모가 없으며 이러한 성분을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성분이 포함된 식물성식품들이 인간에게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식의 성분 속에서는 소화되어 우리 몸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빛을 발하는 성분이 있는 반면 우리 몸 밖으로 제대로 나와야만 제 역할을 하는 성분이 있다. 섬유소가 바로 후자의 경우로 섬유소는 몸 밖으로 빨리 배출해야 하는 성분들은 제대로 빨리 몸 밖으로 배출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을 제때 공급하는 것 만큼이나 필요하지 않은 것 혹은 나쁜 것들을 제때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사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우선순위가 훨씬 더 높은 작업이라고 믿는다. 만찬이 시작되기 전 쓰레기로 가득 뒤덮힌 식탁을 먼저 치우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또한 저자는 인류탄생이래 가장 초단기간에 모든 방면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20세기가 원래 식품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켜버렸는지에 대하여서는 그리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저자는 그 지역의 원래 자연환경에 적합하게 자라던 동물들이 되돌아오게 해서 그 동물성식품들을 먹자는 주장을 최종적으로 펴고 있다. 소가 자라기 좋은 지역에서는 소를 먹고, 쥐가 자라기 좋은 지역에서는 쥐를 먹고?
그러한 주장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는 논외로 하고 기도만 하면 기도빨로 소가 저절로 자라고 쥐가 저절로 자라든가? 이들도 풀을 먹든 뭐를 먹든 먹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하고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20세기 인류가 환경 속에 내질러놓은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생명체에 서서히 농축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현 시점에 우리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한다는 것은 이러한 화학물질을 차곡차곡 모았다가 한 입에 털어넣음을 의미한다.. 채식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글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현재 동물성 식품속에 농축되어 있는 화학물질들은 인류가 만든 화학물질들 중 가장 독한 놈들이며 만성적으로 노출될 때 매우 다양한 건강상 문제를 초래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곡물류에 대한 저자의 시각에도 오류가 있듯이 인간은 원래부터 식물성식품만을 먹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주장에도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과정중에 인간이 동물성식품에 적응이 되었다고 본다면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현미채식은 어쩔 수 없이 하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현미채식이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될려면 좀 더 주의깊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나저나 이 책은 아마 우리 큰 아들이 제일 반길 듯 하다. 몸짱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려 몸 만든다고 고기만을 탐닉하는 놈.. 그래서 겨울방학내내 나랑 살벌한 언쟁과 신경전을 벌였지만 결국은 언제나처럼 내가 포기해버린 놈.. 조만간 나한테 이 책을 선물로 보내줄 듯 하다..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