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POPs와 당뇨병
사비를 들여서라도 당장 POPs와 당뇨병간의 가설을 검정해보고 싶더군요.
일단 이 가설을 검정할려면 사람들의 혈액에서 이 POPs물질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 물질을 측정하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POPs물질을 측정할 수 있는 대학, 연구소 같은 곳이 국내에는 몇 군데 안 되는데다가 대부분 환경 중에서 나오는 시료에서 측정을 하고 있었지, 사람의 시료에서 측정하는 곳은 정말 드물더군요.
그 중 한 곳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난 이런 저런 연구자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 약 100명 정도에서 POPs를 좀 측정하고 싶다구요. 뭐~ 길게 이야기도 하지 않더군요. 한 사람 측정하는데 비용이 200만원이고, 혈액을 일인당100cc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좌절했죠. 몇 주 동안, 별 생각을 다 해봤지만,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연구비가 아니더군요. 그리고 혈액 100cc라니.. 헌혈하지 않는 다음에야 그 정도 양의 혈액을 누가 나에게 연구하라고 제공하겠냐 싶더군요.
우울과 상심의 나날들이 지나갑니다.
한편,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enter for Disease Control)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미국의 일반인구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선정해서 건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소위 국민건강영양조사라구요.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도 최근 비슷한 것을 하고 있긴 한데요, 미국의 자료는 우리나라와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아주 엄청난 자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모든 자료를 개인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만 삭제하고는 web site에 공개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저같이 남들이 보기에 망상에 가까운 가설들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에게는 어떤 가설이 일차적으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검정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죠.
미국에 있을 때 이 자료에 대하여 알게 되어서 정말 유용하게 많이 사용했는데요, 문득 이 자료에 혹시라도 POPs가 측정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3초 만에 얘네들이 미쳤냐? 그 비싼 걸.. 싶더군요. 며칠을 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가.. 뾰족이 할 일도 없고, 뾰족이 놀 일도 없었던 어느 날,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맘으로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헉~ 놀라 기절할 뻔 했습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의 자료에서 무려 미국인 수천 명을 대상으로 그 비싼 50여 종의 POPs를 측정해서 떡 하니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거 아닙니까? 걔네들이 이걸 측정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더라구요.현재 미국일반인구집단에서 POPs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 소위biomonitoring의 목적으로 측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바로 그 순간부터 단 일 주일 만에 논문의 first draft를 끝냈습니다. 그 일 주일간은 잠도 안 오고 밥도 먹기 싫더군요. 그래도 전혀 피곤하지도 않구요. 마약하는 사람이 꼭 저 같았을 것 같더군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제가 아주 가끔 밤을 세우면서 어떤 일을 할 때가 있는데요, 이 때는 혼자 심심하지 않게 막장 드라마 같은 것을 인터넷으로 동시에 틀어 놓고 일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 논문을 쓰면서는 뭔 일인지 어울리지 않게 고품격 시사프로그램들을 틀어놓고 싶더군요.
이 프로, 저 프로 닥치는대로 틀어놓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제 주의를 사로잡은 한 프로가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KBS에서 방영하는 일요스페셜이란 프로로 기억하는데요, 바로 소위 산업폐기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점을 고발하는 프로였습니다. 쓰레기 소각장이나 매립장 설립이 님비현상으로 육지에 세우는 것이 힘들어지자, 국가에서 엄청난 양의 산업폐기물을 동해와 남해에 투척하는 것을 1980년대인가, 1990년대인가부터 시작을 했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어떠한 문제를 가져오는지를 다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전율이 오더군요. 이거구나 싶은.. 하던 일 완전히 다 접고 그 프로만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의 GGT가 7년동안 꾸준한 상승을 보였는지 이해가 될 것 같더군요. 산업폐기물들은 당연히 수많은 화학물질의 덩어리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다에 투척된 그 화학물질들이 결국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다양한 바다식품들을 오염시켰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OPs로 논문을 쓰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는 것이 무슨 운명같이 느껴지더군요.
2006년 1월경 Lancet에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됩니다.
결과가 참으로 놀랍게 나왔거든요. 혈중 POPs치와 당뇨병사이에 무지무지하게 강력한 관련성이 있는데다가, 혈중 POPs치가 아주 낮은 사람들은 아무리 뚱뚱해도, 심지어 BMI가 30이 넘어도 당뇨병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죠.이는 비만보다는 POPs라는 물질이 당뇨병발생에 더 결정적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소견으로 제가 1편에서 소개했었던 혈청 GGT와 당뇨병간의 관계와 너무나 흡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reject이더군요. 한 마디로 too good to be true라는.. 한 두 번 겪은 일도 아니고 이젠 상처도 안 받습니다. 이 논문은 몇 달 후인 2006년 7월Diabetes Care라는 Diabetes분야의 전문잡지에 실립니다 (Lee DH, et al. A strong dose-response relation between serum concentrations of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and diabetes: results from the National Health and Examination Survey 1999-2002. Diabetes Care. 2006;29:1638-44).
그런데 이 논문이 PubMed에 뜨고 단 하루 만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대학의Miquel Porta라는 교수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Congratulation이란 한 마디와 함께 내가 지금 너 논문을 나의 모든 collaborator들한테 보냈다라고 딱 2줄 썼더군요. 보통 어떤 사람에게 이메일을 처음 보낼 때는 자기 소개도 해가면서 보내는 것이 상식인데, 이 사람은 이메일을 보내는 포스가 딱 ‘너 나 몰라?’라는 포스더라구요. 대체 넌 누구냐? 싶어 구글을 슬쩍 검색해보니, 세계 역학회 회장까지 지낸 무지 유명한 사람이더군요.
바로 급비굴모드가 되서 답장을 했죠.^^ 관심을 가져줘서 무지 고맙다 어쩌구,저쩌구.. 이번에는 좀 길게 이메일이 왔더군요. 그런데 그 내용이 뭐냐 하면, 자기가 Lancet deputy editor인데, 내가 지금 너 논문에 대하여 Lancet에 실을commentary를 쓰고 있다. 아마 몇 달 후에는 실릴 것 같다... 어쩌구 저쩌구..이렇게 적힌 것 아닙니까.
진짜 Diabetes Care에 제 논문이 실리고 한 달 뒤인 2006년 8월 Lancet에Miquel이 쓴 제 논문에 대한 commentary가 실리더군요 (Porta M,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and the burden of diabetes. Lancet. 2006;368:558-9). 처음 제가 이 논문을 Lancet에 보냈을 때의 reject한 editor가 Miquel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저로써는 Lancet이라는 잡지에 대하여 다소 어이가 없었다는.. 제가 원 논문을 Lancet에 보냈을 때에는 그렇게 reject하고는 Miquel이 쓴 그 논문에 대한 commentary는 또 그렇게나 금방 실어주더라는거죠. 소위 big journal에 논문을 싣기 위하여서는 연구자의 개인 명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던 순간이었죠.
(To be continued)
올바른 칼럼/Evidence-based 현미채식 2010/12/01 23:43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