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환경호르몬으로써의 POPs
그런데 사실, 그 논문을 쓰면서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현재 대부분 국가의 일반인구집단에서 인체내 POPs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생산금지가 된 지가 수십 년이 넘었으니까요. 그런데 당뇨병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증가를 보이는 대표적인 질환이거든요. 즉, 한마디로 time trend가 서로간에 맞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죠 어떤 화학물질이든 높으면높은 농도에 노출될수록 그로 인한 건강상 문제가 보다 심각해지는 것이라구요. POPs가 정말 당뇨병발생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 어떻게 그 노출량은 계속 감소하는데 당뇨병은 계속 증가할 수 있느냐고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환경호르몬 혹은 내분비장애물질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몇 년 전에 SBS스페셜에선가 환경호르몬의 습격이란 방송을 해서 대한민국 주부들 플라스틱 반찬통 다 버리고 난리가 났었는데.. 기억하세요? 그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은 Bisphenol A, phthalate같은 종류인데요, 요즘 무지 떠들고 있는 이슈 중 하나입니다. 뭐 랩 씌워서 전자레인지 돌리지 마라, 컵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 붓지 마라.. 뭐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그런데 사실 원조 중 원조 환경호르몬이 이 POPs물질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 하나, 테오콜반이 쓴 Our stolen future라는 충격적인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도둑맞은 미래라고 번역되어 있더군요.)
아직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환경호르몬 혹은 내분비장애물질로 발생하는 건강상 문제라면 주로 에스트로겐, 안드로겐과 같은 성호르몬과 관련된 문제들, 여자의 생식기, 남자의 생식기와 관련된 문제만으로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체 자체가 바로 수많은 호르몬의 네트워크이며 이러한 호르몬의 광범위하고 정교한 네트워크는 소위 인체의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어떤 화학물질이 체내로 들어가서 이러한 수많은 호르몬의 정상적인 작용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면 우리는 이들을 환경호르몬, 내분비장애물질이라고 부르게 되고 이들은 우리 인체의 대사와 면역체계에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혈당치란 것도 결국은 우리 몸의 여러 가지 호르몬에 의하여 항상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죠.
이런 환경호르몬의 특징 중, low dose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드리자면 어떤 화학물질이 체내에 존재하는 호르몬의 정상적인 작용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발생하는 건강상 문제는 우리가 상식처럼 생각하듯 화학물질의 농도가 높을수록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농도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오히려 고농도가 되면 그러한 문제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만약 POPs가 환경호르몬과 유사한 기전으로 당뇨병의 발생에 기여를 한다면 현재의 낮은 농도가 과거의 높은 농도보다 당뇨병발생에 더 적절한 농도일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아직 이 부분은 정확한 분자생물학적 기전연구를 통하여 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 저희들이 수행한 후속 연구결과들 그리고 유럽의 다른 다국적팀에서 시행한 동물실험연구들을 볼 때 매우 신빙성이 있는 설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출기간의 문제입니다. 환경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들은 결코 단 시간에 어떤 문제를 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화학물질들은 우리 몸의 항상성에 미묘하게 영향을 미치고, 또 우리 몸은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 대응하여 적절하게 대처하고 지속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장기간이 되면 서서히 우리 몸에 이상이 오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처음 POPs물질에 노출된 시점 이후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현재시점에 이러한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상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만의 문제입니다. POPs치가 매우 낮을 경우에는 비만과 당뇨병사이에 거의 관련성이 없으나, 어느 일정농도이상의 POPs치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동일한 농도의 POPs치를 가진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비만한 사람이 당뇨병의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납니다. 즉, POPs가 비만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 하에서도 여전히 비만은 당뇨병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 참! 여기서 하나 더 알려드려야 할 것이 있네요. 비만조차도 화학물질의 노출 때문에 생길 수 있다는 최근 연구결과를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뚱뚱해지는거야 당연히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서 생기는 병이라고 모든 사람이 믿고 있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화학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되면 체중이 빠집니다만 화학물질에 아주 낮은 농도에 노출이 되면 그 자체로 비만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동물실험 연구결과에서 매우 뚜렷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며 사람에게서도 증거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조만간 아주 큰 사회적 이슈가 될 거니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세요.
현재 FDA와 같은 국가기관에서는 많은 화학물질에 대하여 허용기준이란 것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허용기준이란 것은 당연히 일정수준 이상의 소위 과학적인 방법이란 것을 사용하여 정하고 있긴 하지만 이 기준을 정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현재의 과학적인 방법이란 것에는 매우 많은, 그리고 심각한 허점들이 존재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 중..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현재의 허용기준은 환경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 가지는 low dose effect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죠. 그리고 허용기준을 정할 때 하나 하나의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실험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화학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이러한 노출의 형태가 바로 우리 인간이 실제 환경 속에서 경험하는 노출이죠!)발생 가능한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는 거죠.
현재 인간이 노출되는 저농도의 POPs가 환경호르몬으로써 역할을 한다면 답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많은 염소가 붙은 POPs물질들이 30-40년 전에 생산과 사용이 금지가 되었고 그 절대농도는 매우 낮아졌습니다. 그렇지만 그 낮은 절대농도가 환경호르몬으로써의 POPs가 작용하는 걸 가능하게 해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이 지구상에서 이러한 POPs 존재가 소위zero가 되는 일은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지금부터 몇 세대가 더 지나야 가능할까요? 100세대? 1000세대? Maybe not.. 그리고 7편에서 설명드렸듯이 현재 생산과 사용이 금지된 구POPs외에 요즘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새롭게 뜨고 있는 (?) 신POPs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매일 수 천가지의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신기술이란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비록 예전과 같이 독한 놈들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POPs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화학물질의 노출에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거죠. 이미 인간들은 자신들이 만든 덫에 자신들이 갇혀버린 겁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들이 가진 그 놀라운 적응능력으로 이러한 화학물질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또 인간이 가지게 될 것이라구요.. 일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적응능력을 키울 수 있는 속도에 비하여 인간이 만드는 새로운 화학물질의 속도가 너무나 빠른 겁니다. 한 시간내에 수십세대, 수백세대가 번식하는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들은 유전자를 환경에 맞게 적절하게 변형시켜가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화학물질의 세상에서 충분히 살아 남을 겁니다. 항생제에서 살아남았듯이.. 그렇지만 인간이 그러기에는 소위 life cycle이 너무 깁니다. 이 지구상에서 최후의 승자는 결코 인간이 아닐 겁니다.
(To be continued)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