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쯤인가 항산화제를 주제로 한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어요. 사실 요즘 저의 모든 에너지는 POPs와 같은 환경 중 저농도 화학물질의 노출에 집중되어 있는데 갑자기 항산화제를 다루겠다는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와서 처음에는 좀 당황을 했었죠. 알고 보니 제가 베지닥터에 올렸던 글들이 그 발단이 되었더라구요
촬영을 하면서 PD질문에 대한 답들을 대충 하기는 했는데 제가 글빨보다 말빨이 현저히 딸리는 지라.. 끝나고 나니 왠지 횡설수설했다는 느낌 때문에 개운치가 않더군요. 특히나 가장 중요한 왜 항산화제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전에 대하여서는 이야기를 좀 하다가 중간에 접어버렸어요. 시청자들 머리 복잡해질까 싶어서요... 저는 제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은 결코 보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가 어느 정도 편집이 되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특기는 말하기보다는 쓰기이므로 이것을 주제로 베지닥터에 글을 다시 한번 올려야겠다고 맘먹었죠.
<ㅋㅋ 구글이미지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제 사진^^ >
제가 애초에 비타민C와 같은 항산화제가 해로울 수도 있겠다고 가설을 가진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올린 글 “철분이야기”에 나오듯이 반응성이 높은 유리철분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비타민 C와 같은 항산화제가 오히려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쪽으로 변신을 해버릴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이에 더하여 일정 수준의 산화스트레스란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쪽으로 견해가 바뀌어 버렸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 볼까 합니다.
“왜 생명체는 노화하는가?” 이 질문을 두고 20세기 들어 날고 긴다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답을 얻기 위한 엄청난 노력들을 해왔는데요 그 중 현재까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론이 “프리래디컬 이론 (Free Radical Theory)”입니다. 이 이론은 1950년대에 Denham Harman이라는 연구자에 의하여 처음 제안되는데요 우리 세포는 정상적으로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 중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미토콘드리아내에서 프리래디컬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프리래디컬 이론”이란 이렇게 대사과정중에 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는 프리래디컬들이 유전자, 지방, 단백질 등등에 산화적 손상을 야기하고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이러한 손상들이 누적되기 때문에 병들고 노화가 온다.. 뭐 이런 이론입니다.
“프리래디컬 이론”은 나중에 “산화스트레스이론”으로 살짝 그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요 왜냐하면 이런 산화적 손상을 야기시키는 물질중에는 프리래디컬도 있지만 아닌 물질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산화적 손상을 야기시키는 물질도 중요하지만 우리 몸에는 이에 대처하는 항산화시스템도 매우 정교하게 발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런 물질이 얼마나 많은가보다는 궁극적으로는 항산화시스템과의 밸런스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요즘은 “산화스트레스이론”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됩니다.
실험연구결과를 보면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어떤 외부 자극을 주더라도 비타민 C와 같은 항산화제처리를 같이 해주면 산화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분자구조물의 손상이 줄어드는 것은 아주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연구 결과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항산화물질이 듬뿍 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은 사람들에게서 각종 질병발생위험이 낮아지는 결과들을 보면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항산화제를 약으로 만들어 섭취하면 산화스트레스가 줄어들어서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게 되었죠. 특히나 실험연구결과들이 너무나 드라마틱했었기 때문에 제약회사에서는 항산화제를 보충제로 만들기 시작했고 의사들도 일반 사람들도 이러한 보충제를 먹음으로서 본인들이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실제로 이러한 항산화 보충제를 먹은 사람들에서 오히려 질병발생이나 사망의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기 시작하면서 의학계는 소위 맨붕에 빠지게 됩니다. 제가 올린 글 “철분이야기”에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죠. 코펜하겐 쇼크라고..
그런데 이 산화스트레스 이론의 인기가 최근 시들해가고 있어요. 시들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산화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하여 필수적이며 오히려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증거까지 나오고 있죠.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시기 어렵진 않으신가요? 산화스트레스가 필수라니??? 더더구나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니??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겨? 싶으신가요?
바로 Hormesis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은 생활습관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칼로리 제한, 운동, 식물성 식품에 듬뿍 든 파이토케이컬 섭취 등이 있는데요.. 그럼 이러한 생활습관들이 어떠한 기전으로 건강에 유리하게 작용하는가? 이러한 생활습관들이 가진 공통점은 바로 미토콘드리아에서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기 힘든가요?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물질을 만들어서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게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미토콘드리아에서 만들어낸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물질은 궁극적으로 우리 세포의 주요 유전자를 자극하여 인체내부에 존재하는 항산화시스템을 엄청나게 활성화시키고 더 강력한 산화스트레스가 닥쳐오면 이에 저항하는 각종 물질들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Hormesis이고 이것이 활성화되면 바로 게임 끝입니다.
항산화 비타민이 실험실에서 보였던 그 환상적인 항암, 항염증, 항노화 반응과는 달리 인체내에서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이러한 우리 인체내의 Hormesis반응을 유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산화스트레스까지 억제시켜버렸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이 최근 생각하기 시작했죠.. 저도 그런 연구자중 하나이구요.. 이 항산화비타민의 아이러니는 향후 건강과 관련하여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예로 회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두어 가지만 당부하면서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먼저, 분자생물학적 작용기전에 초점을 맞춘 세포나 동물 실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행태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엄청나게 복잡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이용한 분자생물학연구가 가지고 있는 단편성과 편협함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늘 부분과 전체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균형감있는 접근으로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세포내부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바로 그 분입니다. 그 분을 잠깨우기 위하여 하는 일상의 노력들.. 그것들이 없이는 근본적인 건강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