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대 예방의학교실에 근무하고 있는 이덕희라고 합니다. 저는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가는 아니고, 대학에서 주로 연구자로써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실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 중 하나지만 다른 어떠한 호칭보다 연구자라는 호칭이 저한테는 가장 편하고, 또한 저를 가장 잘 규정지을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채식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실제 환자를 진료하면서 채식을 임상에서 적용해 본 경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10여 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1, 2년 전부터 결국은 채식이 답이 될 수밖에 없겠다라는 개인적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해서 연구를 통하여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조금씩 조금씩 시간있을 때마다 풀어놓을까 합니다. 10년 동안의 사건기록(?)이니만큼 한 10편 정도 연제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채식이야기는 9편이나 10편쯤 되어야 나올 것 같지만 처음부터 바로 채식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왜 채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처음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편이 설득력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제가 올리는 이야기는 현재 채식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본 회원분들을 위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아직 채식의 중요성을 모르고 계시는 혹은 채식을 사이비의술의 하나쯤으로 생각하시는 임상가들을 위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고 싶은 분을 위하여 저널에 발표된 연구내용에 대하여서는 참고문헌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순수한 연구내용들이긴 합니다만 가끔 학회같은데서 발표하면 반응이 상당히 좋은,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는 평을 듣는 스토리이므로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보시다가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을 달아주세요.
1. 왜 정상범위 내의 GGT가 당뇨병을 예측할까?
2000년 경입니다. 우연하게 절친한 지인의 부탁으로 산업장 근로자들을 수년간 추적조사한 건강검진자료를 분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산업장 근로자들의 생활습관개선을 위하여 교육용 자료를 만드는데 본인들의 건강검진자료를 직접 분석해서 보여주면 교육효과가 아주 클 것이라고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처음에는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심드렁하게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료에서 그 동안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잘 맞지 않는, 너무나 흥미로운 하나의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혈청gamma-glutamyltransferase(GGT)라는 간기능 검사 결과가 아주 강력하게 향후 당뇨병발생위험을 예측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혈청 GGT는 임상에서 시행하는 liver function test에 흔히 포함되는, 보통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간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서 증가하는 그런 효소죠. 보통 임상선생님들은 GGT가 얼마 정도가 되어 눈길을 주시나요? 100U/L정도? 200U/L정도? 그런데 제가 분석한 그 자료에서는 50U/L이하의 정상범위내의 GGT에서 (일반인구집단의 90~95%정도는 50U/L이하의 낮은 GGT치를 가집니다) 혈청 GGT가 조금이라도 증가하면 향후 당뇨병발생 위험이 아주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는 겁니다. 보통 GGT와 같이 변화한다고 생각하는ALT나 AST에서는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구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GGT가 정상범위내에서도 아주 낮은 사람들은 비만해도 나중에 별로 당뇨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이 결과를 보는 순간,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 (그리고 당연히 현재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바와는 달리 비만이 당뇨병의 실질적인 원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정상범위내의 GGT를 증가시키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요인이 당뇨병의 발생에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그 당시로써는 아주 파격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 결과를 두고 혼자 흥분 좀 했었습니다. 제가 원래 antisocial한 기질이 좀 있어서 기존의 상식, 질서에 반하는 아이디어에 굉장히 집착을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
어쨌거나 빨리 이 결과를 유수한 저널에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해 줘야 되겠다는 허망한 공명심에 사로잡혀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논문을 작성합니다. 그리고는 그 해 Lancet이라는 소위 top journal부터 투고를 하게 됩니다. 한달 쯤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답이 옵니다. 당연히 reject먹었죠. Lancet에 투고한 논문의 절반이상은 review도 없이 바로 reject인데 이건 그래도 외부 review까지는 나갔다는 점만으로도 약간의 위로가 될 만 했는데.. reviewer들의 살벌한 comment가 그 당시 초보연구자로써의 삶을 살고 있던 저한테는 상처가 되더군요. 아주 우아하게 비꼬는 논조로, 당신이 이 연구결과를 가지고 세상의 상식을 좀 뒤집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분석했다는 그 South Korea의 자료라는 것이 감히 이러한 주장을 할 만큼 믿을만한 자료냐고 시비를 무지하게 걸어왔더군요.
Lancet에서 reject먹고도 도저히 미련을 못 버리겠더군요. 거의 2년 동안 top journal이라는 top journal에는 다 try했었는데 다 reject먹고, 결국은 초고 완성 후 3년쯤 지난 2003년 3월 Diabetologia라는 저널에 간신히 실을 수 있게 됩니다 (Lee DH, et al. Gamma-glutamyltransferase and diabetes-a 4 year follow-up study. Diabetologia. 2003;46:359-64.). Diabetologia도 Diabetes 관련잡지 중에는 괜챦은 잡지이긴 하지만.. 워낙 초창기 꿈이 컸던지라 실망도 컸죠.
그런데 한 2년 동안 저널에 투고하고 reject먹고 하는 걸 10번쯤 반복 하면서, 특히 당신이 분석한 Korea의 자료라는 것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comment가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소위 조선여자의 오기라는 것이 생기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너희들의 자료로 내가 이 결과가 맞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마~~~ (To be continued)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