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과 만의 해학을 지닌 리처드 파인만
20세기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꾸밈없고 직선적인 미국인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학자로서 20세기 과학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 손꼽힌다.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비롯해 금고털이, 봉고 연주자, 화가 등 엉뚱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따뜻한 인간미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최고의 학자다. 그러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을 명쾌하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학의 전도사로 더 유명하다. 그의 특유한 소탈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과학과 사회, 그리고 종교의 여러 주제를 쉽게 풀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조상들도 유머와 해학을 즐겼다. 안동 하회탈과 춤이 이를 반영해 준다. 하회탈춤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그의 삶을 보면 구속이나 경계가 없다. 어떤 학문적인 내용도 그의 입을 통하면 문외한도 알아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천의 얼굴과 만(萬)의 해학을 지닌 그의 저서가 많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에 있었을 때다. 하루는 한 제자가 그를 찾아와 당시 중학생이었던 딸 미쉘을 보고 맘에 들어 나중에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파인만은 그 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장래 사윗감으로 적절한지 일종의 면접시험을 치르는 거다. 여러 질문 가운데 한 토막으로 그야말로 걸작이다. “학생은 생물학적으로 한 명은 남성, 다른 한 명은 여성인 부모를 두고 있겠죠? 만약 아니라면 그에 대한 설명을 주시오”
정말 요절복통할 질문이다. 재미있고 기발하면서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릴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동성연애자, 동성부부가 꽤 많은 것을 염두에 두고 던진 질문이었다. “부모가 혹시 동성부부는 아닌가요?”라는 질문이면 족한데도 말이다.
우리 조상도 해학 즐겨
유머와 해학은 비단 서양의 문화만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도 유머와 해학을 즐겼다. 우리는 안동 하회탈에서 그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양반, 선비 등 사회적 신분차별에 대한 불만을 탈춤을 통해 해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머는 해학, 익살, 우스개 등으로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유머는 뇌의 관여를 유도하는 일종의 뇌 단련 과정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장거리 달리기나 힘든 테니스 시합 같은 육체적 훈련이 우리에게 정신적 육체적 도움을 주듯이 유머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정신적 단련의 혜택을 제공해 정신적 스태미너와 유연성을 증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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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가 삶의 여유를 제공하여 생활을 풍족하고 알차게 만든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1976년 연구에 따르면 창의성 테스트를 치르기 전 코미디 앨범을 듣게 했더니 결과가 20% 향상됐다고 한다.
창의성 증진하고 퍼즐 푸는 능력 좋아져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1987년 메릴랜드 대학 연구진은 코미디를 시청하는 것이 물리학자 출신의 심리학자 던커의 심리실험 ‘촛불문제’ 같은 두뇌퍼즐게임을 푸는 능력을 두 배 이상 키워준다.
뿐만이 아니다. 윌리엄앤메리 대학의 심리학자 헤더 빌랜저가 발표한 1998년 연구는 유머가 머릿속에서 상상의 물체를 순환시키는 능력을 개선해준다고 시사한다. 유머의 혜택은 지능과 창의성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얼기 직전의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도록 하는 ‘한냉압박실험(cold pressor test)’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손을 담그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고통을 견디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빌 코스비의 시트콤 코미디(The Bill Cosby Show)’를 10분간 시청한 후 섭씨 1.7도의 찬물에 얼마나 오래 손을 담그고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찬물에 대한 개개인의 통증 내성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을 하기 앞서 밋밋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보다는 확실히 오래 견딜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체력 단련처럼 정신을 단련 시켜 유연성 강화
체력 단련처럼 유머는 스트레스가 심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비하는데 도움을 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러한 유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심리학자 아놀드 칸 교수의 2000년 연구에 대해 언급했다.
동물도살, 사형집행 등 끔찍한 죽음의 장면이 이어지는 1978년 영화 ‘사형참극(Faces of Death)’을 보기 전 스탠드업 코미디(호흡이 빠른 일종의 개그형 코미디)를 16분간 보게 했더니 심리적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방주사처럼 유머가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방어하는 힘은 놀라울 정도다. 물론 모든 종류의 유머가 이롭다는 뜻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징벌(self-punishment)이나 부정적인 사고에 의존하는, 삶에 대한 어둡고 냉소적인 태도는 해로울 수 있다.
이런 유머를 선호하는 사람은 우울한 감정이나 불안감이 높고 긍정적인 자신감이 낮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건전한 해학과 웃음은 건강하다. 사람들과 만났을 때 자시만 항상 타깃이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활기찬 유머감각을 지니면 인지적, 정서적 측면 모두에서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규칙적으로 뇌를 단련시킬 수 있어 역경과 고난이 닥쳤을 때도 뜻밖의 즐거운 관련성을 찾게 된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그의 기상천외한 해학과 유머에 있다. ⓒ 위키피디아
“나의 삶에서 큰 즐거움은 노벨상이 아니라 ‘발견의 스릴’”
노벨상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러한 활기찬 유머감각을 ‘발견의 스릴(thrill of discovery)’이라고 불렀다.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노벨상 수상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유머는 이런 종류의 스릴을 제공함으로써 과학자도 아닌 우리 뇌가 정기적으로 발견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가 스릴이 넘치는 발견을 통해 물리학 박사학위를 딸 확률은 너무나 낮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재치가 넘치는 유머는 마치 정치인들만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져 있는 냉정하고 차가운 정치사회에서 정치인의 익살스러운 유머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여유와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게 사실이다. 또 그들의 유머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