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인으로써 <채식의 배신>을 환영하며....
이 책이 나오자마자 거의 모든 언론사들과 열혈 잡식인들은 유사한 논조로 '채식은 영양학적으로나 생명 윤리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신화(Myth)'를 단호히 깨뜨렸다고 환호하며 육식 문화의 정당성을 물타기 한다. 한편 대다수 채식인들은 불쾌감을 드러낸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을 잘 사보지 않는다. 강연장에서 사인해서 팔라는 충고도 보통 흘려버린다. 꼭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주문하는 열의를 지니고 있고, 현장 분위기로 인한 충동구매는 종이 낭비이며 환경오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보통 시골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그런데 비치되려면 한참 걸리므로 마침 서울 방문 기회가 있어서 대충 훑어볼 생각으로 모 서점을 들렸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재고가 없어 포기하고 산골 집으로 내려와 출판사, 언론사, 그리고 독자 서평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인식의 전환을 주장한 서평 일부가 눈에 띤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성립된다는 깨달음, 그리고 인간은 최종 포식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여야 하지만 때가 되면 그 자신이 그 원환적 순환의 한 고리로 그들의 먹이가 돼야 한다는 깨달음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동양 철학에 불과하지만 새삼 새길 대목이다. 동학 해월 선생의 “이천식천(以天食天', 한울이 한울을 먹는다)” 말처럼 비채식이든 채식이든 우리가 먹는 것은 타 생명을 먹는 것이므로 영장류인 우리의 삶은 좀 더 진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 따라서 고통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려는 우리는 음식과 길러내는 땅과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늘 간직하는 자기 성찰로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잔반으로 버려지는 풍요로운 음식 문화와 지나치게 편리와 입맛 중심의 기계식 인스턴트식품에 대해 무장 해제된 마음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운동가의 임무는 자기 자신을 최대한 갈고닦아 체제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도 사회 운동가들이 한 번쯤 음미해보아야 하지 않을 까 싶다.
그 다음 콩의 과용에 대한 우려에 동의한다. 이 지적 역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동물성은 물론 식물성 단백질의 과다 섭취에 대한 경고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자세히 언급되었고 채식인들 사이에도 주창된다. 과유불급, 콩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강연장이나 칼럼을 통해 두부 등 단백질을 따로 챙기려는 태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깊이 따져 들어가면 콩의 과잉 섭취의 뿌리는 육식 영양학이다. 단백질 신화의 주축인 서양 육식 영양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콩 단백질이다. 채식인들 중 간혹 단백질 보충 때문에 매일 두유나 두부를 먹는 분들을 볼 때 안타깝다. 매일 두부와 두유를 챙기며 건강관리를 해왔지만 얻은 건 만성 신부전이라며 원망하는 환자도 생각난다. 두부나 두유는 흰쌀이나 흰밀에 비교된다. 참고로 두부의 주 원료인 노란 대두 콩은 벌레 피해가 심해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최근 채식 식당을 종종 이용하면서 외식에 대해 관대해진 내 태도와 채식 인스턴트식품과 콩고기 요리 맛에 잠시 빠져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고마운 책이다. 설탕으로 버무려진 흰 빵, 채식 아스크림이나 채식 케이크, 튀긴 음식을 자주 먹으면서 건강과 자연 보호를 말하는 채식주의라면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저자가 최종적으로 채식을 버린 이유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신체 정신 상태인 듯하다. 비건 식사를 한 지 6주 만에 저혈당증을 경험했고, 3개월 만에 생리가 멈췄다. 냉증에 시달렸고 만성 피로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위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젊은 나이에 척추가 내려앉고, 퇴행성 관절질환, 그리고 우울증과 초조감 등 정신적으로도 고통 받았는데 그 원인이 채식이라고 굳게 믿는다. 또한 저자는 몇몇 문헌을 내세워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변호하고 곡물을 전혀 먹지 않고 육류와 짐승의 젖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나 북극의 원주민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없다고 꼬집는다. 오히려 곡물 즉 탄수화물로 기초한 식단은 포도당 공급을 너무 많이 했다, 너무 적게 했다 하는 사이클을 만들어 장기와 혈관 상태를 악화시킨다고 ‘서양식 영양학’적으로 ‘일리 있는’ 주장을 핀다. 맞다. 채식인들 중에 냉증, 암, 심장병, 고도비만 환자도 종종 본다. 야외활동 없이 정제된 곡물, 과일과 생채소 위주의 채식은 이 가능성을 높인다. 마찬가지로 육식을 과다 섭취한 사람에게도 결국 나타난다. ‘육식의 문제점 = 콜레스테롤’, 이 가설은 잡식 영양학자들의 주장이다. 콜레스테롤 이상으로 동물성 단백질과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 그리고 섬유질과 영양소 부족 등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놓친 현대 영양학 전문가들의 결론일 뿐이다. 원주민이 암에 잘 걸리지 않는 이유는 음식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건강한 환경과 건강한 노동에 만족하며 스트레스 없이 살며, 현대인과 달리 생선 살코기 보다는 비타민이 풍부한 부신을 가장 중요하게 섭취한다는 진실을 외면하는 무지도 범했다. 나는 채식을 강요하거나 잡식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연치유를 알리는 의사 신분이기에 선택의 결과를 분명히 알린다. 정제식은 위험하다. 육식 비율이 높을수록 위험 역시 커진다. 반면 껍질째 먹는 통곡식 위주의 건강 채식은 이 위험을 대부분 싹 해결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이미 비건 잡지를 통해 밝혔듯이 채식인들 또한 이 점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밖에도 곡물 재배를 위해 목초지가 사라졌고 비료나 파종, 수확, 가공, 운반에 화석연료가 쓰인다는 사실을 외면했기에 채식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탄수화물 소비를 촉진하려는 곡물 대기업의 계략이라는 황당한 결론도 덧붙인다. 곡물 대기업과 축산 대기업은 서로 경쟁하지만 한 뿌리이다. 많은 곡물이 축산 사육에 소모된다. 농지를 늘리기 위해 산림을 깎는 가장 큰 요인은 축산의 팽창 때문이다. 전 지구인이 곡물 채식을 한다면 곡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돈다. 또한 ‘채식주의는 자연에 무지하다’고 힐난한 채식주의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채식을 하는 동양의 영적 스승 중에는 식물은 물론 미물, 심지어 돌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서양 잡식인들의 철학이다. 채식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 철학은 우주 유기성과 윤회를 가르친다. 그래서 미물이라도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의 눈에는 미국식 채식주의, 그 중에서도 할리우드 채식주의자들이 대표라고 믿는 듯하다. 헐리우드는 영성을 둔화시키려는 권력자들의 대표 사업장이다. 인도의 성인 마하마트 간디처럼 진정한 채식주의는 자급자족의 로칼 푸드를 기반으로 하며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반대한다. 대다수가 존경하는 수많은 영적 스승들은 소박한 채식을 권했고 이것이 평화로 가는 기초이며 그럴 때 지구는 영속된다고 가르친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잡식인 기업들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전쟁과 기아 등 인류 재앙의 원인을 채식인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거대 곡물 기업을 비판하면서 또 다른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는 엄청난 실수는 서양식 급진적 유물론의 성향을 보이는 키스에게 이미 예견된 일이다. 술, 커피, 담배와 각종 불량 식품을 피하는 모르몬교와 재림신자들을 비교하여 육식을 하는 모르몬 교인이 채식 위주의 재림신자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가 육식 섭취라는 결론은 키스에게 당연하다. “완벽한 대차대조표”를 원했던 키스였지만, 자연 치유에 대해 무지하고 서양 의학의 영향 아래 있는 키스에게 두 집단의 차이를 감지하리라는 기대는 애당초 무리이리라.
이 처럼 反 건강적 음식에 대한 자기 성찰을 못한 저자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급기야 ‘가능한 아이를 낳지 말자’ ‘차를 더 이상 몰지 말자’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르자’란 아주 ‘효과적인’ 제안을 내놓기 이른다. 열렬히 환호했던 서평들은 채식으로 전환보다 어려운 이런 급진적 주장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키스에게서 서양 예언자들의 종말론을 느끼는 것은 지나칠까? 지은이는 유명한 환경운동가이자 농사꾼이지만 그보다도 20년 가까이 비건(vegan)으로 살았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다고 주장하는 모 신문의 서평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논리대로라면 거의 평생, 아니 대대로 채식을 하며 건강을 잘 지키고 있는 동양권 채식인들은 허깨비일까?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저자는 16세 혈기 왕성한 모습을 40대에도 여전히 보여준다. 그런 성격의 저자를 볼 때 자연치유 의사로써 참 안타깝고 연민이 든다. 캔 참치 한 점이 “내 온몸의 세포, 글자 그대로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할 정도의 잘못된 채식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사명감 하나 만으로 버텨왔던 20여 년간 스트레스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롭고 채식이 원망스러웠을까? 나는 자연치유에서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명감이나 억지로 채식을 떠미는 것은 또 다른 反 치유적 행위이고 채식에 대한 반감만 키우므로 어린 자식에게 조차 강권하지 말길 부탁한다. 키스처럼 음식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하기보다 아예 채식을 선택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조금만 더 마음이 따뜻하고 열린 마음의 채식인 이었다면, 채식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환경적 우위에 있다는 자만에 대한 통렬한 자기 비판서였다면 참 좋은 책이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채식의 배신>(원제 The vegetarian myth)은 정말 회심한 채식주의자의 참회록일까? 내 눈엔 고기 맛의 기억이 각인된 뇌 회로를 방치하고 분별력을 상실하여 그토록 끔찍하게 여겼던 ‘육식으로 회기’ 이외 다른 대안은 없다고 믿어버린 불쌍한 영혼의 자기변명서로 보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채식인들이 나서 키스를 도울 때이다. 이미 뿌려진 카스의 책이 저자의 바람대로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선 흰쌀과 흰밀 그리고 설탕으로 만들어진 채식 음식을 보고 ‘건강 음식이다’라고 말하거나 비채식인을 도덕적으로 폄하하는 채식인들의 자기반성의 계기로 이 책을 받아들이자. 나 역시 휴지 한 조각, 장작은 물론 온 만물에 감사할 수 있는 긍정의 힘을 일깨워주고 흩트려졌던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이 책에 고마움을 전한다. 잡식인들에게 신의 가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