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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1 14:57
조계종 공식 사찰음식점 "발우공양"
 글쓴이 : 설경도
작성일 : 11-07-21 14:57 조회 : 3,871  
조선닷컴 인터뷰

조계종 공식 사찰음식점 "발우공양"

총책임자 대안 스님

  • 취재 : 문갑식 gsmoon@chosun.com
  • 출처 : 조선닷컴
  • 입력 : 2010.02.27 03:11 / 수정 : 2010.02.28 14:22
 
 

우리 땅 야생 풀에도 부처님<佛性>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맛은 머리보다 感으로 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정확한 量'
인부들 음식 남기면 스님이 먹어야

사바(娑婆)세계의 명함을 내밀자 대안(大安·50) 스님이 말했다. "저랑 종씨(宗氏)네요." 그는 196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5남5녀의 아홉 번째였다. '시원한(凉) 물(水)', 이 범상치 않은 이름이 부모가 지어준 속명(俗名)이다.

'문양수'는 전주여상을 졸업한 뒤 노동부에 들어갔다. 별정직으로 임용돼 전산업무를 하다 해외파견 근로자 가족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그런 그가 지금 우리 산하(山河)에서 나는 우리 풀에서 '부처님의 본성(佛性)'을 찾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공식 사찰음식점 '발우(鉢盂)공양'의 총책임자, 그게 대안 스님의 직함이다.
시원한 물처럼 세상을 적셔달라는 당부를 받은 그다. 이제는 사바대중을 크게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그다. 모든 게 운명이다.

발우는 바리때, 즉 대접같이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 나무 그릇을 말한다. '발우공양'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맞은 편에 있다.
전국 승려 중 사찰음식 전문가는 20여명밖에 안 된다. 그중에서도 그는 '공인(公認)전문가'인 셈이다.

'발우공양'은 절집 밥을 파는 곳답게 육류(肉類)를 전혀 쓰지 않는다. 지리산·덕유산·오대산·조령산에서 자생하는 우리 풀, 우리 뿌리로만
밥상을 꾸민다. 풀뿌리와 나무껍질(草根木皮)로 목숨 잇던 시절 그건 불행을 뜻했다.

그런데 뿌연 연기 속에 부(富)의 상징인 양 육고기로 질탕하게 배 채우던 우리 몸이 어느새 병들고 말았다.
그제야 다시 우리 산하를 되돌아보고 있다. 그야말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우매하니 중생이다.
 
채공
스님은 주방에 있었다. 매일 낮 12시부터 3시까지 계속되는 점심시간의 끝 무렵이었다. 대화는 조계사 일주문에 태양이 걸렸을 때 시작됐다.
 취재와 사진촬영을 마치고 보니 해는 어느덧 누런빛으로 변해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스님은 "속세의 일을 쓰지 말라"고 했다. 기자는 읽는 재미를 말했고 독자의 알 권리를 외치다 마침내 부처님을 들먹였다.
스님은 궤변(詭辯)에 미소지었다. 손오공이 손바닥에서 노는 꼴을 본 부처님이 그렇게 웃었을 것이다.

―왜 그 좋다는 공무원을 그만뒀습니까.

"제가 조실부모(早失父母)했어요. 어머니는 9살 때, 아버지는 고 2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많이 그리웠어요.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나중에 결혼해서 어머니처럼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그런 게 참 두려웠습니다."

―처녀가 결혼 안 한다는 게 세상의 3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전 줄곧 혼자 사는 꿈을 꿔왔어요."

―그래서 머리를 깎은 건가요.

"어머니는 부처님을 믿었지만 집안 분위기는 천주교에 가까웠어요. 형제들이 다 미션스쿨에 다녔고요.
1983년 인천의 수녀원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제 대모(代母)님을 따르다가 수녀가 되려 했던 거지요. 수녀원에 있었는데 많이 답답하더군요.
제겐 안 맞는 것 같고. 그래서 나왔지요."

―부처님은 안도감을 주던가요.
"바로 위 언니 영향이 컸어요. 저보다 4년 먼저 출가(出家)했거든요."

―그분이 누군가요?

"지금 국일암 암주(庵主)로 있는 지은 스님입니다."

―집에서 반대하지 않던가요.

"다 반대했지요. 제가 설득했어요.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시 돌아오겠다, 못 살면 돌아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랬더니 금세 포기하던가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3년 동안을 찾아왔어요. 큰오빠가 절 데리러 오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안 돌아간 걸 보면 스님에겐 부처님이 뭔가 다른 존재였던 모양입니다.

"출가 후에도 방황을 하긴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전(經典)이 나와 무관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둘씩 납득이 되기 시작했고요.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그게 1985년 가을이지요.

"출가해 1년간 행자(行者) 생활을 했고 그 뒤 해인사에서 채공(菜供)을 하게 됐습니다."

―채공이라면 절에서 부식물을 만들거나 야채를 관리하는 일?

"흔히 반찬 만드는 일이라고 하지요."

―대안이라는 법명은 누가 지어주셨나요.

"진재 스님이요. 대안은 '크게 편안하다'는 뜻인데 편안할 안자가 공(空)이라는 글자와 맞닿아요. '공'은 우주의 실상을 말합니다.
형상은 비어있는 것 같지만 들뜨지 않고 편안한 상태지요."

손맛

스님에게 속세에 있을 때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있었지만 나 자신이 한 남자에게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남녀가 평생 사랑하며 살기가 얼마나 힘드냐"는 것이었다.

독자들이 오해하겠다고 하자 스님이 말했다. "결혼해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모든 게 변하는데 남녀 사이가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요. 정말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거지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강원도 원주 근교 보현사라는 비구니 암자에서 석달간 고시(考試)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들이 참 일을 많이 하더군요.

"지게 지고 도랑에서 흙 파내고, 요즘도 옛날처럼 그렇게 일 시키면 다 도망갈 겁니다."

―채공을 하는 스님들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까지 기도 정진한 뒤 아침 식사 준비를 하지요. 그 뒤 각자 방으로 들어가 불경을 읽다 '사시맞이'준비를 합니다.
사시는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를 말합니다. 그 뒤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합니다. 절집에는 살림이 많아요.
광부터 다락까지 정리해야 하고 삶아야 할 것도 많고요. 해질 때까지 쉴 틈이 없어요. 하루에 개인적인 시간이 1시간 남짓할 정도예요."

―부처님을 만나러왔다가 채공만 하니 후회되지는 않던가요.

"채공만 한 건 아닙니다. 1988년 승가대에 입학해 졸업했고 그 뒤 선방(禪房)생활을 3년 했어요. 승가대 교무직도 1년을 했고.
본격적인 사찰음식은 진주 월명암에서 성원 노(老)스님과 함께 있을 때 익혔어요. 그때 국일암 불사(佛事)도 했고요.
후회되지는 않았습니다. 다 제가 가야 할 길이거니 하고 생각했지요."

―불사라면 절 짓는 일?

"빈 절터에 부처님이 비 맞고 계셨어요. 재투성이에 씻을 공간도 없고 허허벌판 움막에서 살았습니다.
일꾼 20명에게 하루에 여섯끼를 해줘야 했어요."

―불사를 끝내고도 채공은 계속됐겠지요.

"국일암에 상주하는 스님이 8~10명 정도시고, 초파일에는 300명가량이 오니까요."

―혹시 스님이 되기 전 음식을 해본 적이 있나요.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외출하면 일꾼들이 난리가 났어요. '스님! 밥 안 주고 어디 가시느냐'고."

―부엌일 한번 안 했다면서 그 솜씨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전 처음부터 손맛이 있었어요. 손맛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감(感)이지요. 음식은 한 수저의 미묘한 갭이 맛을 좌우합니다.
전 식재료를 보면 재료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생각이 났어요."

―힘쓰는 일꾼들은 고기를 찾을 텐데, 채소만 먹이면 불만을 내비치지 않던가요.

"제가 절 음식 아닌 거 해준 것은 라면밖에 없어요.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사이에 '참'을 내주는데 김밥을 제일 많이 만들었고 칼국수,
수제비도 많이 했어요."
―그럴 때 제일 중요한 게 뭔가요.

"양을 정확히 맞추는 일이지요."

―양(量)이 왜….

"인부들이 먹고 남기면 스님들이 먹어야 하니까요. 퉁퉁 불은 라면을 깨끗한 물에 씻어 먹고 칼국수는 씻어서 다시 양념해 먹어야 해요.
어떤 이들은 '그걸 더러워서 어떻게 먹느냐'고 하지만 수행(修行)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행자로 있을 때부터 큰스님들로부터 음식에 관한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쌀 한 톨, 콩나물 대가리 하나 하수구에 버리면
제석천(帝釋天·불법을 지키는 신)이 그것이 썩을 때까지 울고 있다'는 말을요."

발우공양에서는 세 종류의 코스요리를 내놓는다. 풀과 열매, 버섯을 슴슴하게 먹는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고소한 향도 낸다. ☞ 동영상 chosun.com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입산(入山)

중생을 공양하던 스님의 건강에 이상이 왔다. 속가(俗家)의 형부이자 불교음악가 김용호가 작곡한 찬불가(讚佛歌) 음반을 취입할 때
 대안 스님은 솔로를 맡았다. 그런데 고음(高音)부분에서 그 곱던 목소리가 쉰 소리로 갈라졌다.

경기도 부천 성가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었다. 병명(病名)을 알자마자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다.
53㎏이었던 체중이 6개월 새 65㎏으로 12㎏이나 불어나고 만 것이다. 자꾸만 방바닥에 눕고 싶어졌다.

―스님도 몸무게가 그렇게 불어나는 경우가 있나요.

"갑상선 기능항진증은 원래 마르고, 기능저하증이 살이 찐다고 들었는데 전 반대였어요.
음식 탐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업보라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드셨기에.

"공양 때는 어시발우라고 밥을 나눠주는 스님이 반쯤을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퍼담아요. 전 항상 고봉을 만들어 먹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밥통 하나 크기였어요. 불가에서의 수행은 자기 마음을 비우고 적게 먹고 적게 자는 것이었는데도요.
지금은 다섯 수저 정도만 먹습니다."

―살이 찌니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디스크며 신경통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괴로웠어요. 피둥피둥 살찐 수행자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사람이 점점 위축되더군요.

―그래서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간 거지요. 그게 지금의 금수암(錦�m庵)이고요.

"원래 그 자리는 아는 스님이 토굴을 파놓았던 곳이었어요. 우연히 거길 갔는데 그 스님이 '논산 가야곡으로 가야 해 이 터를 팔아야 하는데
다른 스님들께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날 꿈을 세 가지나 꿨어요."

―무슨 꿈입니까, 그게.

"큰 바다에 거북이가 있고 맑은 물에 소라가 있는 꿈이었어요. 두 번째는 큰 강에 뜬 반야용선(般若龍船)에 제가 타고 있는 꿈이었어요.
반야용선은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갈 때 타고 가는 배입니다.
그 위에서 제가 장삼을 입고 징을 치면서 염불을 하는 거예요. 세 번째 꿈은 기억이 안 나고요."

―그래서요.

"다음 날 하도 이상해 아는 스님께 여쭤보니 '그 터가 대안스님과 인연이 있는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선객이 100만원도 없는데 무슨 수로 그 터를 사겠느냐고 되물으니 그 스님은 '기다려보라'고만 했어요."

―그런데 그 터를 진짜 샀다?

"속가의 형제들이 추렴을 해줬어요. 800평을 2100만원에 구입하고 그 뒤 불사를 했지요."

―지리산을 오르며 풀과 나물을 캔 것도 그때의 일이지요.

"동네 심마니들이나 약초 채취꾼들을 따라다니며 한번 산에 오르면 한 자루씩 풀과 나물을 뜯어왔어요.
주로 지리산을 올랐지만 경북 문경(聞慶)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풀은 200가지 정도 됩니다.
그중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는 건 50가지 정도고요. 산에 다니는 한편 한방의 약초공부도 했지요. 침과 뜸도 배웠고요."

―풀과 나물을 캐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참으로 산은 계절마다 골고루 풀과 나물을 주지요. 봄에는 두릅 다음엔 취나물, 그 다음은 다래순, 엄나무순, 들미순, 개발딱지,
곰취까지 며칠 간격을 두고 이어져요. 6월이 되면 머루, 오미자가 나오고 가을이면 송이버섯, 능이버섯, 꾀꼬리버섯이 나오고요."

―그러다 건강을 되찾은 겁니까.

"도토리 주워 묵 쑤고 콩 불려 가마솥에 장작불 때 두부 만들고 콩나물 기르면서 1000일 기도 하다 보니 갑상선 질환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체중도 정상으로 돌아오더군요."

―그 건강이 지금까지 유지되던가요.

"얼마 전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 그러던데요, 장이 '20대 같다'고."

정통

대안스님은
진주 국제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서울 동국대에서 한일(韓日) 간 사찰음식 비교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코스를 밟고 있다. 사찰음식 대중화방안이 논문 주제라고 한다.

실전(實戰)능력에 이론까지 겸비할 때 조계종이 사찰음식 직영점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이 웰빙음식으로 절밥에 주목하자
'정통(正統)'을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발우공양은 작년 6월 오픈했다.

―종류가 세 종류의 코스 요리더군요. 코스 이름이 특이하던데 무슨 뜻이 있나요.

"십바라밀, 십이법륜지상, 십오깨달음상이라고 붙였어요.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 거지요.
같은 이름의 코스라도 매월 메뉴를 바꿉니다. 코스요리 외에 송이누룽지탕 같은 6~7종류의 일품(一品)요리도 있습니다."

―코스별로 2만5000원, 3만6000원, 5만3000원이던데 값에도 심오한 뜻이 담긴 건가요?

"그건 원가(原價)계산해서 정한 거예요. 8개월 동안 해보니 적자는 아니지만 영업이익이 적더군요.
모두가 국산재료인데다 고가의 송이(松耳)를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한식이 지나치게 싸지요.
식당을 이용하는 분들이 파스타나 중국음식은 군소리 없이 먹으면서 한식은 흔하고 집에서 먹는 가정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찰음식은 무슨 양념을 씁니까.

"간장을 베이스로 된장, 고추장, 마른 표고, 마른 다시마, 산초, 참기름·들기름, 참깨·들깨, 콩가루·쌀가루·찹쌀가루·고춧가루가 전부지요.
파·마늘·부추·달래·양파(원래는 흥거) 같은 오신채(五辛菜)를 쓰지 않아요. 멸치나 육류도 전부 제외되고요."

―이곳에서도 음식을 남기면 안 됩니까.

"처음엔 그릇을 주고 드실 만큼 드시라고 했어요. 발우를 헹군 물까지 마시라고 했는데 손님들이 싫어하더군요. 그래서 코스요리로 바꾼 거예요."

―그럼 음식이 남는 거 아닌가요, 제석천이 울 텐데.

"음식이 남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리필을 원하면 언제나 해드리지만 처음부터 드실 만큼만 내줍니다. 남는 음식은 포장도 해주고요."

―풀과 채소가 정말 그리 좋습니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란다는 건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자라는 것과 다르지요. 콩나물 하나만 봐도 다릅니다.
야생 풀과 채소는 항산화 작용도 강하고 재배 야채와 비교해보면 에너지의 차이도 커요."

―사찰음식의 기본 정신은 사람들이 잃은 건강을 되찾게 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럼 야생 풀과 채소가 부처님인가요?

"영혼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불성(佛性)이 다 내재돼 있다고 봐야지요."

―그래도 육류 섭취를 완전히 금하는 건 조금….

"채식이라고 전부 야채는 아니지요. 곡류도 있고 견과류도 있고 줄기도 있고 잎도 있고 열매도 포함됩니다.
콩만 해도 검은콩, 흰콩, 완두콩, 울타리콩 하는 식으로 나는 시기가 다르고 양도 달라요.
단백질은 두부니 두유,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만든 '콩고기'로 충분히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극히 일부지만 고기 드시는….

"개인 취향이기도 하고 저 같은 정통 출가자가 보기엔 출가가 너무 쉽게 이뤄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을 법한데요.

"요즘 시대에 뭘 음식을 가리느냐고 하지만 수행의 기본이 자비심인데 남의 살을 식품으로 본다는 게 문제지요.
만일 소(牛)에게 '얼마 줄 테니 네 살 좀 줄래'하고 물으면 소가 '그래 내게 그 돈 줘, 살을 줄 테니'라고 하겠어요? 생명은 하나지요."

―혹시 스님은 출가 전에 고기를?

"속가의 부친이 죽세공도 하고 목재사업도 했어요. 집에 남자 일꾼 100명이 상주했고 살림하는 여자도 20명 가까이 됐어요.
6살 때 큰 오빠 장가갈 때 돼지 잡는 걸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19살까지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직장생활하면서 먹긴 했지만요."

하심(下心)

대안스님은 자신이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암 환자, 아토피 환자, 당뇨병 환자 등을 위한 '맞춤형 식단'도 조언하고 있다.
그 기본은 동양의 오행(五行)으로, 색에 따라 기능이 다 다르다는 데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푸른색은 눈(眼)과 간에, 검은색은 신장과 방광에, 황색은 위장과 비장에, 흰색은 폐와 대장에, 붉은색은 심장에 좋다는 것이다.
복분자, 구기자처럼 뒤에 아들 자(子)가 붙은 것은 신장에 좋다는 식이다.

―제가 혈압이 높은 편인데 혹시 조언해준다면.

"생솔잎 두 가닥에 요구르트 2개를 섞어 매일 믹서에 갈아마셔보세요. 한 달만 지나면 달라질 겁니다."

―암 환자를 실제로 풀과 야채만으로 치유할 수 있나요.

"치유라기보다 하심, 즉 욕심을 버린다는 게 채식의 근본 개념입니다. 모든 세포는 자기 정화작용을 해요.
세포 하나하나가 우주이고 독립적인 세계지요. 그런데 암세포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세포입니다.
그러니 자폭(自爆)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거지요. 고기는 그런 걸 가속시켜요."

―신선한 고기는 괜찮지 않나요.

"겉보기에 그래 보여도 가열이 덜 되거나 냉동고에서 변질될 수도 있고요. 건강해지려면 신체 밸런스를 지키고 신선한 공기 마시고 좋은 물
마시고 생각을 비워야지요. 야채나 풀처럼 공인된 건 먹되 출처 모를 음식, 확인되지 않은 음식은 안 먹는 게 좋고요."

―풀과 야채 예찬론자이신데 나물을 다섯 가지만 꼽는다면 뭐가….

"취나물은 향이 좋고 콩나물은 콩을 길러 먹는 거니까. 다래순, 엄나무순, 냉이도 좋아요. 냉이는 나물로 해도 좋고 튀겨도 좋고
냉이차(茶)로 만들어 마셔도 좋지요."

―원래 사찰음식은 차하고도 인연이 깊지요.

"사찰음식 못지않게 차도 전문가입니다. 행자 때부터 차를 배우는데 처음엔 녹차를 마시다 산야초, 머위, 냉이, 구지뽕잎, 칡꽃, 산돌복숭아꽃
같은 것으로도 차를 만듭니다. 백초차(百草茶)도 있고요."

―차 하나에 100가지 풀이 들어간다? 과장 아닌가요.

"실제론 100가지 이상 들어갈 때도 있어요. 파는 데는 없지만 '발우공양'에선 이야기 길게 하시는 분께 내드리고 있어요."

―앞서 사찰음식 전문가가 국내에 20여명 정도라는데, 전부 비구니인가요?

"사찰음식보존회 회장이신 적문스님만 비구시고 나머지는 전부 비구니지요."

―왜 20여명 중 대안 스님이 조계종 공식 사찰음식점 총책임자가 됐다고 생각합니까.

"그분들은 사찰음식점을 여는 것과 관련해 생각이 달랐습니다. 저는 찬성했고요. 일례로 대만 불광사는 포교원을 지으면 반드시
사찰음식점을 같이 만듭니다. 저희도 장차 25개 교구 본사에 사찰음식점을 낼 생각도 하고 있고요."

일본도 불교가 성한데 그곳 사찰음식은?

"일본 사찰음식은 맛이 없어요. 기본 간만하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안 쓰니 향이나 고소함이 없지요

―총책임자가 되면 대우가 달라지나요.

"협약에 의해 하는 거니까, 급여는 월 200만원쯤 받고요."

―할 줄 아는 사찰음식이 모두 몇 종류나.

"1000개 정도의 레시피가 제 머릿속에 들어있어요. 그 가운데 400개 정도는 제가 응용해 창안한 것이고요. (다 만들 수 있느냐고 묻자)
당연히 다 만들 수 있지요."
 
출처 :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inside/why/old_index/201002/27/index.html
 
 
 

뉴욕, 사찰음식에 빠지다

 
 
  • 출처 : 조선닷컴
  • 입력 : 2010.09.24 03:06
 
 
오피니언 리더 300여명 참석, 감탄사 연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 20여명이 불 밝힌 연등을 들고 입장하자 스님들의 법고(法鼓) 공연이 펼쳐졌다. '둥두두둥, 두두둥둥….'
이어 한국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됐고, 스님들의 사찰음식 조리과정과 발우공양 준비과정을 보여주는 사진 20여점이 전시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한 '한국 사찰음식의 날' 행사가 지난 20일(현지시각) 오후 6시 30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전시·행사 전문공간인
'스카이라이트 소호'에서 2시간여 동안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의 음식평론가와 음식 전문기자, 대학교수 및 정치인 등 오피니언 리더
300여명이 참석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20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한국 사찰음식의 날’행사에서 사찰음식 전문가 선재 스님이 참석자에게 사찰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조계종 제공
 
'오행김밥' '연근삼색밥' '두부우엉조림' '각색 메밀전병' '연잎밥' '간장 매실장아찌' '삼색무쌈'…. 뷔페식으로 차려진 마흔 가지
사찰음식을 접시에 담아 서툰 젓가락질로 맛을 본 파란 눈의 미식가들은 '원더풀(훌륭하다)' '어메이징(놀랍다)' 같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다리우스 워커(Darius Walker) CNN 뉴욕 편집장은 "맛이 좋아 벌써 다 먹었다"며 빈 접시를 내보였다. 그는 "한국 사찰음식은 다양한 재료를
쓰고 여러 종류의 음식이 많은 맛을 내고 있다"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평했다.

2004년부터 한국음식 블로그 '젠김치(
www.zenkimchi.com)'를 운영하고 있는 조 맥퍼슨(Joe McPherson)씨는 식전행사에서 자신이 경험한
사찰음식의 특성을 소개했다. 그는 "2007년 서울 봉은사에서 버섯죽을 처음 먹었는데 마치 숲 속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깨달을 수 있는 '음식 참선(eating meditation)' 체험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미국에 생긴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음식은 적문 스님, 선재 스님, 대안 스님, 우관 스님, 정관 스님 등 대표적인 사찰음식 전문가들이 나흘 동안 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준비했다. 주요 양념은 한국에서 가져왔지만, 식재료는 현지 시장을 돌아다니며 마련했다.
행사 사회는 뉴욕1방송의 한국계 앵커 비비안 리(Vivian Lee)씨가 맡았다.
이번 행사를 총괄한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효탄 스님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지만 정작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사람들에게 조리법을 알려주고, 채식만으로도 얼마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올해 말 사찰음식 전용 사이트를 개설하고, 2012년까지 매년 한국 사찰음식을 해외에 알리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출처 :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23/2010092300897.html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점 발우공양 콩 개점기념
http://www.youtube.com/watch?v=SjtL6-zdLOA
 
 
사찰음식 3호점 '공감' 개점
 
2011년 05월 04일 (수) 10:12:51 박봉영 기자 opyj@naver.com
매년 2억5천여만원의 수익금을 조계종총무원에 납입하고 있는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이 서울 신정동에 3호점을 냈다.
조계종총무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3일 서울 신정동 국제선센터 1층에 세번째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 공감'을 개점했다.
발우공양은 종단차원의 첫 사찰음식 전문점으로 지난 2009년 4월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5층에 문을 열어 사찰음식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템플스테이정보센터 2층에 발우공양 2호점인 '발우공양 콩'을 개점한 바 있다.
   
▲ 새로 개점한 사찰음식 3호점 '공감' 전경. 사진=조계종총무원
개점식은 총무원장 종책특보단장 정념 스님과 불교문화사업단장 지현 스님, 국제선센터 주지 현조 스님, 발우공양 대표 대안 스님 등이 참석했다.
지현 스님은 "사찰음식은 우주만물과 조화로운 삶을 함께하는, 자비와 상생의 불교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우리 시대 최고의 방편"이라며 "소박하지만 격식 있는 한 그릇의 죽, 한 그릇의 찌개, 한 그릇의 국수가 몸의 약, 마음의 약이 될 수 있고, 우리 시대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 사진=조계종총무원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정념 스님이 대독한 격려사를 통해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가 지켜온 상생과 비움의 정신을 사찰음식점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선보였을 때, 우리는 깨끗하고 정갈한 먹거리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았다"며 "화합과 상생, 조화의 담박한 맛과 정성은 사찰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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