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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30 19:52
장수로 귀농한 딸 부잣집 이필재·정유생 부부"너른 세상이 최고의 배움터입니다"
 글쓴이 : 설경도
작성일 : 14-03-30 19:52 조회 :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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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로 귀농한 딸 부잣집 이필재·정유생 부부"너른 세상이 최고의 배움터입니다"

베스트베이비 | 입력 2014.03.28 09:18

전북 장수군 계남면 산자락 어귀, 큰길에서 마을로 접어드는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니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겨우내 꽁꽁 얼었다 녹은 흙길 위를 한참 달리니 저만치 산자락에 소담스런 흙집이 한 채 보인다. 이곳에 장수로 귀농한 지 8년차인 이필재(52세)·정유생(41세) 부부와 어여쁜 네 딸 하현(15세), 우현(13세), 현빈(11세), 현중(7세)이 함께 살고 있다.

귀농 꿈꾸며 5년을 준비하다

이필재 씨는 서른다섯 넘어 시골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맞았을 무렵, 도시에서의 삶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내가 먹을 것은 내 손으로 농사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생태적 귀농을 꿈꾸었다. 한편 무주에 자리한 대안학교 푸른꿈학교의 교사였던 정유생 씨는 늘 자연 가까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흔히들 말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시골이 답이라 생각했죠."

그러던 중 남편을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나자 꿈은 더욱 견고해지고 구체화되었다. 1999년 부부의 연을 맺으며 전라도 남원에 터를 잡고 서예학원을 운영하며 농사를 지었다. 큰딸 하현이가 세 살 되던 해까지 남원 시골집에서 3년을 살았다. 그런데 하루는 집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했다. "시골서 살려면 집 한 칸과 농사지을 내 땅은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기로 했죠. 아내가 대구 사람이라 대구로 건너가 당분간 도시에서의 삶을 살기로 했어요. 준비 기간으로 5년을 잡았는데 진짜 꼬박 5년이 걸리더군요."

지금의 장수 집터는 유생 씨가 학교에 근무하던 당시 자주 지나치던 길목이었다. 오며 가며 입버릇처럼 "참 양지바르기도 해라. 이런 곳이면 딱 좋겠다" 했는데 그 말이 씨가 되었단다.

"해발 500~600m 되는 곳이 사람 살기 가장 좋은 곳이래요. 볕 좋은 남향이고 저기 집 앞에 흐르는 계곡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인데다 집 앞의 3305㎡(1000여 평) 농지는 여섯 식구가 먹을 건강한 농산물을 길러내기 부족함이 없었다. 큰딸 하현이가 여덟 살, 막내 현중이가 8개월 되던 해, 그렇게 가족은 장수 땅에 뿌리를 내렸다.

가정이 학교, 세상 곳곳은 배움터

산골짜기 네 자매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부부에게는 '가정이 학교'이고 '세상이 배움터'라는 교육철학이 있다. 그래서 학교에 보내지 않고, 대신 홈스쿨링을 택했다. 네 아이는 책을 읽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배우며 자연을 벗 삼아 논다.

"자매가 넷이다 보니 저희들끼리 참 잘 놀아요. 심심할 겨를이 없죠. 학교에는 안 가지만 대신 여행을 많이 다녀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러 다니고요. 어디에 좋은 강의가 있다고 하면 온 가족이 다 함께 그 선생님 뵈러 짐을 꾸리죠. 그런 경험이 아이들에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필요한 순간마다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줄 거라 믿어요."

학교에 안 보내니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 사회성은 언제 기르느냐며 걱정이란다. 그런데 필재 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동갑내기 또래들을 모아둔다고 사회성이 길러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래 같은 나이끼리 모아두면 사회성이 아니라 '경쟁'부터 배우죠. 옛날 공동체 사회에서 말하던 '또래 집단'은 동갑내기가 아니라 위·아래 층층이 있는 언니 동생 사이를 말하는 거였어요. 그 안에서 서로 어울리고 치고받고 싸우기도 해야죠. 그러면서 형님들한테는 배우고, 손아래 동생들을 보살피며 생기는 게 진짜 사회성이에요. 그런데 요즘 학교는 경쟁부터 배워요. 학교에서부터 시작된 경쟁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까지 쭉 이어지더군요."

1 밖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애들이 참 밝네요.'다.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생기발랄하게 자라는 자매들.

2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흙집. 둥근 형태의 구조물이 독특하다. 건축을 배운 이필재 씨가 직접 지은 '가족의 보금자리'다.

3 토종 씨앗으로 직접 키워낸 100% 유기농 자연식 식단.

속도는 더디지만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부

아직은 꽃샘추위라 봄바람이 차다. 쌀쌀한 날씨를 핑계 삼아, 아이들은 눈을 뜨면 점심을 먹을 때까지 방구들에 발을 묻고 책을 읽는다. 아직 글을 못 읽는 막내도 언니들 옆에서 책 속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다들 글자를 늦게 깨쳤어요. 그런데 한 번 글을 깨치더니 그때부터는 책읽기가 제일 좋은 놀이가 되더군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는데 한 명당 세 권씩 빌릴 수 있어요. 저희 식구가 여섯이니 매주 스무 권 정도를 빌려와 일주일 내내 읽어요."

집에서 공부하는 방식은 아이 성향 따라 제각각이다. 범생이 스타일 큰딸 하현이는 계획표를 짜고 거기에 맞춰 공부한다. 하루치 학습 목표량을 반드시 채우고, 스스로 정한 공부 시간도 꼬박꼬박 지킨다. 기분파인 둘째 우현이는 하고 싶을 때 몰아서 하는 식이다. 얼마 전부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영어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영어가 너무 어렵다고 한숨을 쉰다. 하지만 중국어에는 재미를 붙여 진도를 쭉쭉 빼고 있다. 4학년 나이인 셋째 현빈이는 2학년 수준의 교과목을 공부하는 중이고, 막내 현중이는 한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굳이 공교육의 틀에 빗대어 보자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는 1년에서 많게는 3년쯤 뒤처진 정도. 하지만 정말 신기한 건 아이들 전부 저마다 '알아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책상 앞에 앉고 모르는 게 나오면 책을 찾아보며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부부가 가르쳐주는 식이다. 알아서 공부하는 습관은 단지 학습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4 집안일은 모든 가족이 나누어 한다. 오늘의 상차림 당번은 첫째 딸 하현이.

5 마당에는 강아지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운다. 아니, 키운다기 보다 고양이들이 이 집에 알아서 터를 잡았다.

6 좁은 양계장이 아닌,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자라는 행복한 닭들. 이 닭들한테서 나온 행복한 달걀은 식구들의 식탁에 오른다.

네 자매는 다들 음악 공부에 열심인데 악기를 다루는 솜씨며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둘째 우현이와 셋째 현빈이는 몇 달 전부터 읍내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와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는 여럿이 같이 합주를 하는 방식이잖아요. 아이들하고 어울리며 화음 맞추는 게 재미있나 봐요. 사실 현빈이는 악보 읽을 줄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거기 가서 무수히 많은 콩나물 머리를 보면서 진도 따라잡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악기까지 빌려와서 열심히 연습하더니 어느 순간 발로 딱딱 박자를 맞추며 스스로 깨치더라고요. 좀 더디긴 하지만 그런 모습 보면 참 기특해요."

아이들은 판소리고법(판소리에 맞춰 고수가 북으로 장단을 치는 반주법)도 배우고 고전무용도 배운다. 읍내 문화센터에서 한 달에 만원 주고 5년째 배우고 있는 가야금 실력은 수준급이다. 첫째·둘째가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독주곡으로 잘 알려진 '침향무'를 들려주는데 가야금 뜯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장난꾸러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꼬마 예인들이 앉아 있는 것 같다. 실력이 꽤 출중해 지난가을에는 장수 한누리전당에서 공연도 가졌단다.

스스로 공부하는 게 몸에 밴 아이들에게 '배움'은 언제나 즐거움 그 자체다. 하루는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더란다. "엄마,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은 좀 이상해. 수업 시작하자마자 선생님한테 '지금 몇 시예요?' 하고 물어봐.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던데, 정말 이상하지?"

대안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장수로 온 이후 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근무하는 유생 씨는 요즘 아이들이 참 안됐단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못하는 아이든 하나같이 힘이 없어 보인다. "교실을 보면 1/3은 엎어져 자요. 집에서도 자고, 학교 와서도 자고…. 좁은 교실에 갇혀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싶어요. 수업에 흥미를 못 느끼는 아이들도 참 많고요. 상담실에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뭔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어린애들이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안쓰럽죠."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오롯이 자유 의지로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는 게 의외로 어려운 일이라고 부부는 말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도 공교육의 좋고 나쁨을 떠나 수동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교육 대신, 아이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능동적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자기 삶을 자기 의지대로 꾸려나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7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작은 집에 아름다운 곡이 울려 퍼진다.

8 넷이 모여 있으면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다. 공부도 같이 하고, 게임도 같이 하면 시간이 훌쩍 간다.

9 네 딸 중 가장 활달하고 토라지기기도 잘 하는 막내 딸 현중이.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최근 중국어에 재미를 붙인 둘째 우현이는 앞으로 3년간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해서 열여섯 살부터 자격이 주어지는 중국 해외청소년 교류 협력단에 꼭 들어가고야 말 거란다. 일정 수준의 중국어가 가능해지면 비행기 값만 가지고 한동안 중국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첫째 하현이는 도서관에 가면 매번 요리책을 잔뜩 빌려온다. 쿠키며 스콘도 굽고 어려운 나물 반찬도 뚝딱 만들어낸다. 채소 다듬는 칼질도 열다섯 살 아이의 솜씨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 심지어 요즘에는 엄마한테 나중에 같이 식당을 하자며 꾀기도 한다.

항상 생기 넘치고 언제나 하고 싶은 것 많은 네 아이를 보면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부는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농사지으며 '지속 가능'한 행복을 꿈꾸다

이들 가족은 100% 자급자족으로 자연식 밥상을 차려 먹는다. '내가 먹을 건 내가 기른다'가 시골살이의 목표였고 장수에 와서 만 5년 만에 그 목표를 이루었다. "5년째 되니까 다 되더라고요. 처음에 쌀은 사다 먹었는데 3년 전부터 쌀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완벽하게 자급자족하고 있어요. 닭도 열다섯 마리를 키우는데 여름에는 저희가 다 못 먹을 정도로 알을 낳아요. 사료 안 주고 쌀겨 등을 먹이다 보니 확실히 겨울에는 산란율이 떨어지지만 그때는 달걀 좀 덜 먹으면 그만이죠 뭐. 장에는 고기나 생선 사러 갈 때나 나가요."

그러고 보니 집 곳곳에 가으내 갈무리한 시래기며 말린 나물이 보인다. 오랜 시간 쟁여놓고 먹을 수 있는 고구마며 감자 박스도 잔뜩 쌓여 있다. "작년에는 고구마 농사가 제법 잘됐어요. 고구마 심으면서 농사 잘되면 고구마 팔아다가 여행 가자고 아이들과 약속했죠. 그래서 고구마 심는 것도, 풀 뽑고 관리하는 것도 거의 아이들이 했어요. 가을에 수확해서 직거래로 팔고 그 돈으로 보성, 순천만 쪽으로 여행을 다녀왔지요."네 아이는 집안일이며 농사일에 모두 팔 걷어붙이고 돕는다. 고사리 끊으러 갈 때도 엄마를 따라 나서고, 모종 심고 못자리 만들고 모내기하는 것도 여섯 식구가 다 같이 한다.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산도 잘 타고,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농사일도 척척 해낸다.

"예전에 저희 부모님은 '너희는 농사짓지 마라' 하셨어요. 공부 많이 해서 도시에 가 편하게 살기를 바라셨죠. 그런데 저희 부부는 아이들한테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농사는 절대로 삶에서 떨어져선 안 된다고 가르쳐요. 사실 애들은 노는 게 더 신나고 재미나니까 당장 농사일 거들라 하면 싫은 내색도 해요. 그럴 땐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려면 당연히 같이 일해야 한다고 말하면 묵묵히 따라나서죠."

오늘날 현대 농업은 '석유가 농사를 짓는다'고 말할 정도로 기계농에 의존한 대규모 영농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농업은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게 이들 부부의 생각이다. 그래서 '소농 공동체'가 필요하고 귀농 인구도 꾸준히 늘기를 바란단다. 도시에 살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시스템에 맞춰 돌아가느라 바쁜 탓이다.

이필재·정유생 가족과 네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도시에서의 우리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엄마와 아빠, 깊고 진한 흙냄새 맡으며 자라는 네 아이의 모습은 살아있는 인생 공부 그 자체인 듯싶다.

기획 박시전 | 사진 이주현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life/newsview?newsid=2014032809181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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