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기계공학과 정효일(사진) 교수팀은 바이오칩으로 사람의 감정 변화를 읽는 ‘감성진단칩’의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고, 관련 전자소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자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솔’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공진주파수의 변화 값을 표시한다.
소자 위에 코르티솔을 인지하는 항체를 올려놓고 침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항원-항체 반응이 일어난다. 이 상태의 공진주파수를 측정한 뒤 코르티솔이 없을 때의 공진주파수와 비교해 코르티솔 농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침 속 코르티솔 농도가 높을수록 주파수 변화 값도 크게 나타나는데, 침 1mL당 코르티솔의 농도가 0.1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이면 주파수의 변화 값은 7MHz였지만 100ng이면 11MHz로 변화가 컸다.
앞으로 연구진은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소자의 성능을 평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코르티솔 외 진단 칩에 사용할 또 다른 지표도 찾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하나의 지표로만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측정하기 위해서만도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카테콜아민이나 아드레날린의 농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알파-아밀라아제 등 5, 6개의 후보 물질이 있다.
● “임신 진단 키트처럼 감성 측정” 연구진은 다양한 감성지표의 측정 정보가 모이면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 감정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때 사용한 각 소자를 병렬로 붙여 만들면 혈액이나 침, 소변과 같은 생체 시료 한 방울로도 감정을 측정하는 바이오칩을 만들 수 있다.
정 교수는 “기존 감성 연구에서도 생체 시료를 분석하는 방법이 쓰이고 있지만 시료를 녹이고 원심 분리하는 등 전처리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감성진단칩이 완성되면 임신 진단 키트처럼 시료 한 방울로도 1분 안에 감정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목표로 삼은 감성진단칩은 손바닥 위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랩온어칩’의 한 형태다. 랩온어칩은 암 같은 질병을 간단하게 진단하는 용도로 최근 쓰임새가 늘고 있는데, 연구진은 감정 진단에까지 활용의 폭을 넓힌 것이다. 신용카드 크기의 칩 위에 생체 시료를 떨어뜨리면 이 칩은 감성지표를 분리하고 정제해 센서로 측정한 뒤 결과 출력까지 한번에 마친다.
연구진은 스트레스뿐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 나아가 희열이나 감동 같은 감정도 측정하기 위해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 내분비과 의사와 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상담 및 임상 결과를 참조하고 감성 지표로 사용할 물질을 확보해 소자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사랑에 대한 정확한 지표를 찾을 수만 있다면 사랑의 감정을 측정하는 진단 칩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술은 ‘센서와 액추에이터B’ 1월 21일 온라인판에 실렸으며 5월에 열릴 ‘한국감성과학회’에서 세부적인 내용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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