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난처해지는 경우가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이 있는 환자들에게 밥을 현미밥으로 바꾸고, 반찬은 쌈과 같은 생채소나 나물반찬 위주로 드시라고 권하는데, 가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미밥을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유를 물어 보면, 정부에서 쌀을 지원 받는데, 그 쌀이 백미고, 그 쌀을 현미랑 바꾸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듣고 있으면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namespace prefix = o />
현재 정부는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게 정부양곡가의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원대상자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쌀을 지원하고 있다. 이때 양곡지원대상자들이 받는 쌀이 ‘나라미(米)’다. 정부는 과거 ‘정부미’라는 이름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정부양곡을 2008년부터 ‘나라미’로 이름을 바꾸고 품질개선을 위해 수매하는 쌀의 등급을 올리고, 포장제도 고급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오고 있다.
현재 정부는 ‘나라미’를 백미로만 공급하고 있지만, 현미로 공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대부분의 쌀을 조곡(볍씨) 상태로 수매해 정부양곡 창고에 보관하다 필요할 때 현미나 백미로 가공하여 출하한다. 그리고 정부양곡인 백미와 현미는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양곡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현미를 원할 경우 얼마든지 현미로 가공해서 ‘나라미’를 공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백미 ‘나라미’뿐만 아니라 현미 ‘나라미’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지출하는 급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질환은 고혈압, 그 다음은 당뇨병과 기타 위장관 질환이다. 특히 ‘나라미’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고령이거나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런 만성질환으로 의료기관을 자주 찾는다. 그리고 ‘나라미’ 지원 대상은 정부의 의료비 지원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이 의료기관을 자주 찾게 되면 정부의 의료비 지출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필자는 진료실에서 현미밥과 채식위주 식생활로 고혈압, 당뇨, 비만, 여러 위장관 질환이 호전돼 복용하던 약을 줄이거나 심지어 끊기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면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현미를 먹고 싶어도 백미를 먹을 수밖에 없는 ‘나라미’ 지원대상자들에게 현미 ‘나라미’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스스로 건강관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현미가 건강식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현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나라미’를 현미로 바꾸는 준비와 더불어서 ‘나라미’ 지원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미밥과 채식위주 식생활 교육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이들이 자발적으로 ‘현미 나라미’를 주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들에게 현미뿐만 아니라 현미밥을 맛있게 지을 수 있는 양질의 전기밥솥을 보급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무리 현미가 건강에 좋아도 밥이 맛없게 되면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나라미’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약이 되는, ‘현미 나라미’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나라미’ 현미화로 ‘나라미’를 먹는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호전되고, 그로인해 정부의 의료비 부담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미 나라미’, 더 이상 망설이거나 준비를 늦출 이유가 없다.
<이 글은 의정소식에 기고한 원문으로 편집된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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