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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8-14 08:56
(아고라)경향일보 사설- 살처분되는 자연 (박홍규 칼럼)
 글쓴이 : 베지닥터
작성일 : 11-08-14 08:56 조회 : 2,400  
 
전체기사
[박홍규칼럼]살처분되는 자연
박홍규 | 영남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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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이번 겨울은 정말 살기 어렵더구나. 사방이 ‘출입 금지’ 구제역 플래카드에다 혹한에 폭설까지 내려 그야말로 ‘꼼짝 마라’이기 때문이야. 대부분의 길이 출입 금지인 가운데 통행로 하나마저 뒤엉킨 차들로 가득한 얼음길이어서 그 사이를 걷기란 정말 위험해. 매연과 소음은 물론 운전자들의 욕설과 담배 연기도 참기 어려워. 장발장이나 빠삐용의 무인도 감옥살이가 이런 걸까? 그래도 그곳 무인도는 정말 아름다운 자연 천국이었겠지만 나의 무인도는 인공 지옥이야.
 
 

특히 그날 밤, 살처분을 위해 소독약에 젖어 얼어붙은 모든 길을 막아 오도가도 못하는 가운데 길은 차들로, 들은 포클레인 등 온갖 중장비로 만원이었어. 몇 달 동안 뿌려댄 구제역 소독약과 폭설로 얼어붙은 길 위에 모든 차들이 멈춰섰어. 차들은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운전자는 욕설을 퍼붓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어. 그 사이를 걷던 나는 킹콩 같은 거대한 중장비들이 괴물처럼 버티고 서서 굉음을 울리며 땅을 깊숙이 파헤쳐 산처럼 흙을 쌓는 광경을 멀리서 보았지. 그때 몸부림치는 동물들이 땅밑에 던져지고, 흙더미에 파묻히는 참상이 저절로 그려졌지. 유대인 학살과 민간인 몰살이 떠올랐어. 살처분! 함부로 쓰는 이 끔찍스러운 말! 우리의 일상이 된 이 살해행위! 우리가 과연 생명일까? 이렇게 수백만의 생명을 죽이다니!

동물 살해로 생명력 잃은 농촌

나는 그 길을 12년 동안 걷거나 자전거로 다녔어. 그러나 그날 이후, 그 소들의 맑은 눈이 떠올라 그 앞을 지나갈 수 없어. 사실은 처음도 아니었지. 소소한 살처분은 몇 번이나 있었어. 어쩌다 죽은 병아리나 닭을 땅에 묻는 일도 끔찍이 싫었는데, 조류인플루엔자(AI)를 이유로 몇 년을 키우던 닭들을 포대기에 싸서 땅에 묻고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어. 내 손으로 내가 함께 살던 산 짐승을 죽인 것이었지. 동물과 함께 살고 식물을 키우기 위해 시골에 온 내가 스스로 생명을 살처분한 것이었어.

그동안 자네에게 말한 적이 없지만 사실은 시골에 들어온 첫날부터 후회했어. 목장에서 나오는 악취와 폐수 때문이었지. 대부분의 우리 시골이 그렇듯이 내가 사는 마을의 사방 고지에 목장이 있어. 목장이란 그야말로 몸만 들어가는 좁은 통에 꼼짝 못하고 갇힌 소들이 사료를 먹고 똥을 싸면서 무조건 살을 찌우다가 죽는 곳이야. 그곳에서 나오는 살인적인 악취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하고, 폐수는 근처 못에 사는 수천마리 물고기를 살처분시킬 정도야. 그 악취나 폐수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골 고유의 정치로 인해 아무 소용이 없었어. 그래서 시골에서 살기를 고집하는 한 죽을 때까지 그 악취나 폐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도리어 익숙해지기로 결심했지. 그렇게 해서라도 시골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살처분한 인공인 도시로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생채식이 땅을 살리는 대안

살처분이 일시적으로나마 악취와 폐수를 없애주고 동물들도 그런 지옥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만 악순환일 뿐이야. 사실 동물만이 아니라 인간, 아니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사는 자연은 이미 살처분됐어. 그래서 이제 이곳 시골에 자연은 없어. 살처분된 자연에는 인간도, 양심도 없어.

도시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에 시골 자연에서 동식물과 함께 살아보고자 왔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환상이었어. 동식물과 함께 살 땅 한 조각이 없어. 식물을 그 모습 그대로 유기농으로 키우고자 해도 사방이 농약 천지야. 동물을 자연 속에서 키우기는커녕 우리 속에 가두어 키워도 살처분의 악순환으로 끝나.

살처분에 대한 대안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고기를 먹지 않고 생채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어. 세계에서 가장 고기 먹는 것을 밝히는 우리의 육식문화와 이를 부추기는 저질 매체들의 행태가 시정돼야 해. 전통이니 종교니 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의 채식 중심 전통 생활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고, 도리어 고기를 먹는 욕망의 탐횡을 해탈이니 뭐니 하는지 의문이야.

서양 문화가 우리에게 끼친 가장 무서운 악습은 육식화와 자동차화야. 그 육욕과 자동차를 줄이지 않는 한 이상해진 기온의 정상화도, 구제역의 예방도 없어. 장발장이나 빠삐용과 달리 내게는 더 이상 탈출해 갈 곳도 없기 때문에 생채식을 해서 자연을 살리고 동식물과 함께 살아가야 해.

 
 
 
(경향신문 2월 24일 오피니언 난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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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닥터 11-08-14 12:55
 
설경도 2011/02/24 12:43  댓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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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찡합니다....ㅜㅜ

삼가 구제역으로 희생된 모든 중생들의 영생을 기원합니다.-_-

유영재 2011/02/24 15:29  댓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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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에 정의로움이 있더군요, 다시말하면 인류 공영의 길이
채식에 있다고 여겨진다는 말입니다.".

조용하게 말씀하시던 어느 언론사 기자님의 말씀과

"살처분에 대한 대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 외에는 없다....는

교수님의 칼럼 내용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실천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 같습니다.

장윤석 2011/02/25 15:07  댓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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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네요.

정말로 답은 채식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선현주 2011/02/26 12:23  댓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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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구제역은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으니 육류 소비를 계속하시라는 방송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칠 주 모르는 인간의 무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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