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화(Glycation) 그리고 최종 당화산물(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 AGE)
작성일 : 11-07-30 11:32
한마디로 인체 노화 과정을 요약하면 산화와 당화 과정이다. 산화는 전자를 빼앗아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고, 당화는 단백질이 혈관을 떠돌아 다니는 당분과 결합하여 최종 당화산물(AGE)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산화와 당화를 통해 만들어진 활성산소와 AGE는 생체 조직 및 세포를 공격하고, 노화와 각종 만성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포도당과 단백질의 잘못된 만남
음식이나 신체 내에서 당과 단백질이 오랫동안 접촉하는 경우에는 당이 단백질에 달라붙게 된다. 주로 Lysine이나 Arginine 등 아미노산에 과당이나 포도당 분자가 결합한다. 이와 같이 당화된 단백질은 본디 기능을 상실한다. 변질된 당 단백질은 서로 합쳐지면서 최종적으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당 단백질이 된다. 이때의 당단백질이 AGE(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 또는 최종당화산물이라고 한다.
지질이나 핵산 등도 마찬가지다. 당이 지질과 결합하면 악성 당화 지질, 당이 유전자 핵산과 결합하면 악성 당화 핵산이라는 AGE(최종 당화산물)이 만들어진다.
AGE가 생성되면 곧 유전자가 작동되어 혈관 벽이나 임파구 등의 세포막에 AGE와 결합할 수 있는 수용체, 즉 AGE 수용체(RAGE: Receptor of AGE)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RAGE에 AGE가 결합하면 염증과 관련된 각종 면역 인자가 활성화되어 만성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AGE는 나쁜 물질이다. 세포 및 조직 기능에 중요한 단백질이 당 때문에 해로운 물질로 변하는 것이다.
단백질 당화는 혈당과 인슐린 수치가 통제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혈당이 높다는 것은 피에 설탕을 뿌려 놓은 것과 같다. 빵이나 고기를 구우면 갈색으로 변하면서 딱딱해진다. 이를 브라우닝 현상이라고 한다.
신체는 단백질로 구성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과 안구 수정체에 있는 크리스탈린, 모발과 손톱의 케라틴, 대동맥과 피부, 연골의 콜라겐, 혈중 단백질인 알부민, 효소와 인슐린, 갑상선 호르몬 등 신체를 구성하고 기능하는데 필요한 물질이 죄다 단백질이다.
따라서 혈당치가 올라가면 이런 단백질들이 연쇄적으로 당화된다.
단백질의 당화는 인체 조직과 기관을 해치며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세포 속의 단백질이 해를 입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조직의 막과 혈관이 두꺼워져서 신축성을 잃는다. 이렇게 손상된 세포가 늘어나다 보면 노화가 촉진되고 질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당뇨병에 걸리면 노화가 가속화 되고 각종 합병증이 생기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변질된 단백질이 노화와 만성질환의 원흉
변질된 당화 단백질은 우선 근육에 달라붙어 강직, 경련 현상을 일으키고, 피부 콜라겐 단백질이 당화되면 피부 탄력성을 떨어뜨려 노화가 촉진된다. 또 혈관의 탄력성을 유지해 주는 콜라겐 단백질이 당화되면 혈관벽이 빳빳해지고 탄력성을 상실, 수축기 혈압은 높아지고 확장기 혈압은 낮아진다. 나이 든 사람이 노인성 수축기 고혈압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당화 공격 위험이 가장 높은 부위는 신체 대사가 활발한 신장 사구체, 안구의 망막세포, 췌장의 베타세포 등이다. 이 때문에 당뇨 환자는 신장 기능, 시각, 청각, 인슐린 분비 기능 등에 문제가 생긴다. 뇌 신경막도 당화 단백질의 공격을 많이 받는 부위 중 하나이다. 당화 단백질이 신경막에 달라붙으면 뇌신경 기능을 파괴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정신병 등을 유발한다. 눈의 수정체에 달라붙어 백내장과 망막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유해 산소가 당화 단백질을 계속 산화시켜 AGE로 만들면 항 산화 능력이 떨어져 각종 효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파괴되기 때문에 만성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
인간의 DNA는 수시로 유해산소의 공격을 받아 손상되지만 회복력이 있어 곧 복구된다. 하지만 AGE가 계속 생성되면 DNA의 복구 능력이 떨어지면서 유전자가 변이돼 암이나 기타 심각한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다운증후군, 낭성섬유증,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을 앓는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AGE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화와 식습관.
당화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설탕을 120℃가 넘는 온도에서 단백질과 함께 조리하면 AGE가 만들어진다. 이 상태로 먹으면 면역계에서 감시자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가 이것을 이물질로 인식해,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고 활성산소를 배출해 인체 조직이 손상된다. 또 당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물질은 암을, 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은 알츠하이머를 유발한다.
당뇨협회 연례회의에서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갈색으로 변한 식품은 심장마비나 뇌졸중, 신경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물이 없는 상태에서 단백질과 설탕을 함께 조리해 음식을 만들 때 AGE가 생성되는데, 이것이 인체 내 세포 조직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갈색을 띠는 빵이나 쿠키, 불에 구운 육류, 심지어 커피까지도 신경 손상 등 인체에 해를 끼치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일 역시 마음 놓고 먹으면 안 된다. 과일이 비타민과 미네랄의 공급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당의 당 활성도는 포도당의 10배에 이르기 때문에 당화반응을 일으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원료가 된다. 비타민과 미네랄을 공급받고 싶다면 과일보다는 채소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백질 당화의 원인은 높은 혈당치이며 혈당치를 높이는 주범은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다. 탄수화물은 뇌, 근육, 심장 등 대부분의 인체 조직 작동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다. 탄수화물이 연소될 때 지방이나 단백질에 비해 불순물 발생이 적고 열량은 지방의 절반에 불과하다.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지방과 단백질 섭취량을 줄여 신체 대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무작정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이는 것은 능사는 아니다. 탄수화물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질 좋은’탄수화물일 때이다.
탄수화물의 질을 판별할 때는 포도당이 혈액에 흡수되는 속도를 수치화한 당 지수(GI: Glycemic Index)를 고려해야 한다. GI가 높은 음식은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높여 인슐린 저항이나 탄수화물 과민반응을 일으키고 비만과 당뇨병 등을 유발한다. 또한 AGE 형성을 촉진해 신체를 스트레스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다. 성분과 열량이 같아도 GI가 높은 음식이 더 해롭다. GI가 높은 식품으로는 밀가루 등 정제 곡물과 설탕, 꿀, 포도당 등이 있다. 과일과 채소 중에는 바나나와 포도, 말린 과일, 감자 등이 GI가 높다.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설탕 섭취다. 모든 곡물과 과일, 채소에는 포도당이 들어있지만 이들 식품에는 당화의 피해를 상쇄할 만한 영양소도 많이 들어 있다. 반면에 설탕과 각종 인공 감미료는 그저 당화를 촉발하는 연료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 식품의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음식을 한꺼번에 몰아서 먹는 과식도 혈당을 높이고 당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이다. 음식을 조금씩 자주 섭취하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가 원하는 당분 섭취량도 줄일 수 있다.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착실하게 먹고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간식을 먹어 3시간 간격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적당하다.
당화 억제는 항산화제로
당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비타민을 비롯해 항산화제를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인 항산화제는 비타민C다. 비타민C를 하루에 1~2g 정도 섭취하면 세포 내 소르비톨 축적을 줄이고 당화를 억제할 수 있다. 비타민D는 AGE로 인해 생긴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녹황색 채소에 많은 베타카로틴과 토마토, 수박, 자몽 등에 함유된 라이코펜, 녹차의 폴리페놀 성분 등도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밀과 마늘도 당화를 막는 식품으로 꼽힌다.
최근 당화를 막는 항산화제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알파리포익산(Alpha Lipoic Acid)이다. 알파 리포익산은 세포 내에 있는 지방산으로서,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대사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항산화제는 물이나 지방 가운데 한쪽에서만 반응하는데, 알파 리포익산은 물과 지방에 모두 반응해서 슈퍼 항산화제로 불린다. 비타민C와 비타민E등 다른 항산화제의 재순환을 돕고, 신경 세포가 산화 손상되는 것을 막아준다.
특히 당뇨병 환자에게 강력한 효력을 발휘한다.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병에서 포도당 이용률을 높이고 단백질의 당화를 막아주며, 당뇨병성 신경병증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녹내장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브로콜리와 시금치, 간 등에 많이 함유돼 있으며, 영양제 형태로도 나와 있다. 적절한 복용량은 하루 20~50mg이며,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에는 하루 300~600mg, 최고 1800mg까지 복용해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