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가 일상적 아젠다로 떠돌고 있다.
흔히 보수, 중도, 진보 이런 식으로 나누거나 좌파, 우파, 중도 좌파, 중도 우파로 가르는데, 그때마다 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이 떠오를 뿐이다. 태음, 태양, 소음, 소양! 엄밀히 말해 진보에서 보수에 이르는 도정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몇십억 명의 인구만큼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존재할 것이다. 찰나도 쉼 없이 변전하는 인간의 머릿속을 떠올려 보면, 단칼에 진보 또는 보수로 사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태로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어쩌다 내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가늠해 보려 할 때마다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헷갈려서 번번이 실패했으므로 이제 그런 시도는 안 한다. 다만, 인간 공동체가 추구하여야 할 이상적 가치를 비전으로 두고 오늘의 내 행동을 비폭력적으로 하는 사람이 진정한 진보주의자일 것이라고 다분히 자의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타행(利他行) 또는 이웃사랑의 실천이 진보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일상적 생활에서 진보주의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까? 아침, 점심, 저녁, 세 끼에 진보적 이타행의 기회가 존재한다. 밥상 위의 이타행(^^). 게다가 이것이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까지를 성취할 수 있다. 채식(菜食)이다.
고기는 담배처럼 일거에 ‘끊지’ 않아도 된다. 일체의 동물성은 물론이고, 벌꿀까지 먹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기르는 동물한테도 채식 사료를 주는 비건(vegan)이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붉은 살코기만 줄여도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첫째, 암 성인병 등을 예방할 수 있다.
둘째, 고기 1인분을 만들려면 옥수수와 콩 22인분치를 가축에게 먹여야 한다.
이를 인간의 양식으로 돌리면 만성적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셋째, 사람의 스무 곱절이나 되는 엄청난 똥·오줌을 싸는 소나 돼지를 기르지 않으면 심각한 수질 오염을 막을 수 있다.
넷째, 목축을 위해 훼손되는 광활한 산림이 보존되어 지구 온난화 등 기상 이변을 줄일 수 있다.
다섯째, 쇠고기 1 ㎏의 값으로 감자 10㎏쯤을 살 수 있으므로 경제적이다.
여섯째, 인간이 자기의 먹이로 삼으려고 ‘사육’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생명체에게 자행하는 잔혹 행위를 중단시키는 윤리적 선택이다.
물론 영양학자들 사이에는 채식을 통해서는 인체에서 합성되지 않는 필수아미노산을 풍부하게 얻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채소와 과일, 견과류, 곡류 그리고 콩 식품들을 골고루 섞어서 먹으면 필수아미노산 근심은 접어도 된다는 주장이, 특히 고기에 멍든 저쪽 서양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른바 웰빙을 넘어 ‘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건강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웰빙족의 소비가 내 한 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로하스 족(族)’의 소비 패턴은 진보적 이타행의 양상을 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식생활을 콩과 채소로 바꾸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21세기에 접어든 뒤 급속히 로하스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자원 낭비국이자 육식의 폐해가 가장 심각히 표출되고 있는 나라의 자기 반성이라고도 해석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