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채식의 함정>을 통해 본 <의학과 전문가의 함정>

MBC <채식의 함정>을 통해 본 <의학과 전문가의 함정>

얼마 전 황성수 박사님은 <방송의 함정>이란 글로 MBC <채식의 함정>이란 방송의 왜곡과 모순을 바로 잡아주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들도 매우 유익한 글이었지만, 이 글은 정말 명쾌하고 통쾌한 글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원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황 박사님은 채식평화연대(이하, 채평연), 채식계에게, 아니 우리나라에 정말 큰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황 박사님은 건강 채식을 하는 現 채평연 고문이자, 前 채평연 창립 상임대표이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황박사님을 보물이라 칭하는 건 그런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명쾌한 글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감탄해마지 않는 문장은 다음입니다. “채식하는데 전문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채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식생활이 아니다. 약간의 상식만 있으면 된다. 자연상태의 곡식, 채소, 과일을 적당한 비율로 먹으면 누구나 건강해지는 쉬운 식사법이다. ‘쓸대 없는 영양상식’만 없으면 된다.”
책과 방송 출연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암, 신부전등, 자가 면역질환 등 난치성이라고 알려진 질병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 약이 아닌 음식 개선을 가장 중요하게 처방하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생업과 존재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그런 발언을 별 대수롭지 않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와 진실을 전하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이런 류의 글을 쓴다는 것이 제 가슴을 크게 울렸습니다. 그래서 더욱 시원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수천 년 동안 부엌을 담당한 주부의 후손인 주부 여러분!
‘채식하는 데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 당연한 말 아닐까요? 고기와 인스턴트-가공식품을 멀리하고 봄에는 쑥과 냉이 된장국을 끓여먹고, 여름엔 온갖 채소와 오이나 가지 등으로 밥상을 차리고 가을에는 호박 된장국을 끓여먹고 한 겨울엔 잘 말린 무청 시래기 된장국과 현미밥을 먹는다면 쉽게 질병이 올 수 있을까요?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누구에게 배워야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음식 관련 방송이 나올 때마다 의사 등 자칭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건강한 식단을 갖추기 위해서는 영양사나 의사 등 전문가의 적절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언제부터 식사법을 전문가들에게 배워야 할 정도 주부들이 무식했나요? 의사나 한의사들이 언제 주방에서 요리 실습하고 영양과 요리 책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있나요? 그럼에도 황 박사님이나 저 등 현미채식하는 의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미채식을 강조하고 환자들과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상담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집니다. 물론 황박사님 등 베지닥터 회원들 중에는 주부 이상으로 요리에 일가견 있으니 당연히 가르칠 자격은 있습니다. ^^

왜 우리는 지금 그런 ‘음식 비 전문가’에게 치료법이 아닌 식사법을 배워야 하는 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지금부터 함께 생각해보도록하지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음식을 생명의 먹을거리가 아닌, 입맛과 볼품의 상품으로, 술집의 안주로 전락시킨 상업주의와 이에 편승한 전문가 집단과 사회문화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급격한 산업 발전 단계에서 계층 간 착취와 전쟁과 분쟁 등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나타난 광범위한 영양실조라는 위기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이 없던 시대에 고단백, 고지방, 고칼로리 등의 이름으로 흰 밀가루와 고가의 고기에 대한 향수로 우리 영혼을 그들의 손아귀에 내놓게 됩니다. 먹고 살기 조차 버거웠던 우리는 모든 삶의 영역, 특히 음식에 담긴 생명의 영혼을 아무 생각 없이 내주었고 지금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암, 뇌졸중, 심장병 등 만성 질환으로 고통과 불행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원인인 것입니다.

흔히들 과학? 의학? 그러면 마치 객관적이고 가장 정확하다는 잣대로 쓰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현대 과학이 탄생하는 동안 기존의 많은 과학 이론들은 사라지거나 수정되어왔습니다. 당연히 의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응용과학의 최선봉에 선 의학은 수십년도 안 돼 거의 싹 바뀌었다 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질병의 이론이나 치료법 등의 변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사례가 많지만, 짧은 지면 상 음식 관련해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열량 영양소(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를 가장 중요한 영양소로 인식했지만, 현대에는 비열량 영양소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식이섬유를 음식의 찌거기로 천대했던 영양학과 의학은 현재 장 미생물의 먹이이며 장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섬유질과 발효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찌꺼기로 천대받던 껍질 속에 항산화물질과 각종 미네날과 비타민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하버드 의대에서 제시한 건강 식판에는 단골메뉴였던 육류와 우유는 빠졌고 곡식 대신 통곡식, 채소의 비율의 증가 등으로 채웠습니다. 이렇듯 주류의학조차도 더 이상은 건강한 현미채식의 가치를 외면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국민 건강을 보살펴야 할 우리나라 정부는 ‘유령의 과학’과 일부 주류 의학 전문가들을 앞세워 진실과 진리를 외면하고 심지어 왜곡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또 그런 행태를 비판하고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과 방송은 침묵하거나 심지어 같이 널뛰기를 하는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지금 우리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계 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 적색육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하며 육류 소비의 축소를 권장하였지만, 대한민국 식약처는 11월 2일 국민 가공육과 적색육의 섭취량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라는 발표를 합니다. 그러나 이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수치보다 크게 줄인 수치라고 합니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공영방송인 공중파 MBC는 채식과 무관한 건강상 문제를 마치 채식 때문인 것 같이 누명까지 씌우는 <채식의 함정>이라는 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시정 요구를 하였으나 제작진은 타당성을 검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송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방심위에 글을 올리든 소송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물론 저는 소송하거나 항의 시위를 할 생각은 눈곱만치 없습니다. 제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업주의의 소방수 역할을 하는 그 분들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기 위해 지금 이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욕하기에 앞서 그분들이 주는 교훈을 되새길 것입니다. 저나 다수의 채식인은 우리 국민, 우리 사회 그리고 인류 모두가 평화롭고 건강하길 바라는 것이지 옳고 그름을 놓고 다투길 원치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하는 바로 잡으려는 역할 역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기에 충실히 하려는 것이지 그분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들과 또 동조하는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맡은 역할은 지금 이 순간 원한다면 바로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때가 되면 언젠가 내려놓게 되겠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끼면 더 일찍 내려놓을 권리, 여러분의 영혼이 더 평화로워질 권리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 시기가 빨리 오길 기도드립니다.

끝으로 우리 채식인 또는 채식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황 박사님 같이 지식인이면서도 <의학과 전문가 함정>에 빠지지 않고 겸손한 분은 우리사회에 큰 보물입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제 그릇대로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만큼 여전히 우리 이웃과 인류의 질병과 불행의 시간은 길어질 것입니다. 보물을 보물임을 알아보고 그 보물을 소중히 여기고 잘 닦고 아끼고 제대로 쓸 때 보물입니다. 숭배하자는 게 아니라 그 가치만큼 높이고 잘 보관하자는 것입니다.
채식 역시 큰 보물들입니다. 건강 채식은 개인의 건강은 물론 국민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지구온난화로 인한 각종 재난, 기아, 물 부족, 산림 황폐화, 극지역 해빙, 원자력 발전 문제, 갈등과 분쟁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건강 채식을 하는 우리 역시 큰 보물이며 음식에 관한한 전문가들입니다. 음식 전문가도 아닌 ‘전문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는 채식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함정에 빠진 데서 옵니다. 자만은 금물이지만 채식이 지닌 가치만큼의 자긍심은 옳습니다. 우리 자신부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채식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한 예로 比 채식인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는 동물이나 곤충이나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채식의 가치와 먼 이야기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채식인에 대한 혐오감도 크지만 동시에 비 채식인에 대한 채식인의 우월감 역시 적지 않아 보입니다. 상담이나 대화 중 종종 비 채식인의 하소연을 들을 때가 있더군요. 우리 채식인에 대한 부정적 사회 분위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채식이라는 이 보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MBC방송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다양성과의 평화로운 공존, 이것이 현명한 채식인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이번 논란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2015년 11월 24일

현미채식하는 농부의사 강정 임동규 (가정의학과 전문의, 채식평화연대 자문위원, 베지닥터 회원,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자문위원, 내몸이 최고의 의사다 저자 등)

댓글 0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