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커밍아웃, 나는 비건이다
– 동의의료원 슬관절센터장 송무호 의학박사
어린 시절 어떤 폭력적 기억으로 인해 육식을 거부하는 삶을 살게 된 여자,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혜와 마찬가지로 각인된 기억. 돌이켜 보니 그 기억은 파편화 되어 구석구석 남았고,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그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무더웠던 여름 날, 마을 인근 야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어른들이 개 잡는 광경을 목격했다. 잔인한 인간의 행태를 태어나 처음 본 그 날은, 그가 의사가 된 이후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잔인하게 각인된 세계를 뒤이어 계속 맞닥뜨리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연례행사처럼 복날이 되면 정형외과 의국 회식으로 윗사람들을 모시고 보신탕을 먹으러 가야만 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의리가 중요한 분위기의 정형외과. 오랜 시간이 지났고, 꺼림칙하여 견딜 수가 없던 날들을 이제는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다. 여전히 의리파지만 이제는 심신이 건강한 의리의 사나이. 그는 슬관절(무릎관절)이 주 전공인, 부산 동의의료원 정형외과 전문의 송무호 박사이다.
고통 받고 죽어간 생명을 마주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식탁 위에 놓인 고기반찬을 보고 그 것을 하나의 생명이 남긴 육질이라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다. 송 박사의 하루를 시작하는 식탁은 고기 없이 찬란하다. 죽어버린 생명은 그의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오이, 당근, 고구마, 블루베리, 바나나 등의 과일과 채소로만 구성된 아침식단. 점심엔 병원 식당에서 고기반찬 없이 식사를 하고 저녁엔 되도록 일찍 귀가하여 완벽한 채식식단으로 구성된 집밥을 가족과 함께 먹는다.
고기가 있는 도시락을 먹지 않고, 겉보기에 부실해 보이는 채식도시락을 먹는 베지테리안을 이해할 수 없던, 외국 학회에서의 과거도 이젠 까마득하다. 하물며 수술 성공에 고맙다고 선물한 환자의 루왁커피도 사향고양이가 당했을 동물학대가 떠올라 마실 수가 없다는 그는, 진정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의사다.
모든 병에는 이유가 있다.
생명을 향한 온정주의적 태도가 그의 채식생활을 단번에 결정지은 건 아니었다. 7-8년 전 그의 몸에 갑작스레 생긴 당뇨병 증상으로 인해 파고든 공부가 그 시작이다. 알고 보니 당연하게도, 당뇨는 뜬금없이 발병한 병이 아니었다.
송무호 박사는 많이 알려진 문장 하나를 제시했다.
<This is the last straw> 더 이상 못 참는 다고, 이건 마지막 한계라는 이 문장. 그는 이미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낙타의 등에 마지막 볏짚을 옮겼을 때, 그때서야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낙타를 건강에 비유했다.
“정상인 상태에서 무너지겠어요? 쓰러지겠어요? 안 그렇지. 참을 만큼 참았다는 거 에요. 더 이상 견디다가 안 되니까… 병이란 게 그렇게 생기더라고.”
이미 작고하신 어머니의 당뇨가 자신에게 유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40대 중반에 고혈압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당뇨약을 포함하여 한 주먹씩 약을 먹어야 했다. 수십 년을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하셨던 그의 어머니는 약에 의존하여 살다 생을 마친 것이다. 어머니가 이겨내지 못한 당뇨가 4형제 중 장남인 자신에게 유전되었다는 실망은, 제대로 된 공부와 식이요법으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매일 혈당수치를 재며 식단을 제한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당뇨치료의 원칙대로 바로 약을 쓰지 않고 식이요법을 적용한 것이다. 모든 병엔 이유가 있었고, 결국 그는 당뇨를 이겨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한 비건은 아니었다. 음식이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혈당수치를 높이지 않는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먹다 보니 그 당시엔 육류나 생선도 제한 대상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하더라고. 운동 부족인가 싶었는데 오래 갔어. 그래서 재보니까 콜레스테롤이 높더라고. 그래서 또 공부를 했어. 결국 나한테 지방이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거지. 혈당은 잡았는데, 지방은 못 잡고 있었던 거야.”
통풍에 걸린 정형외과 의사
악착같이 공부하며 이겨낸 당뇨가 끝인 줄 알았건만, 간과했던 부분을 몸이 알아채고 다시 병으로 발현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당뇨를 이겨내기 시작했을 즈음은 SNS 발달로 인해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의 연락이 빈번했고 모임도 즐겨하던 시기였다.
“뻔하잖아. 만나면 고기, 회, 술이지. 어느 날 출근하는데 발이 아프더라고. 통풍이 생긴 거야.”
웃음이 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통풍에 걸리다니. 충격요법으로 따지자면 이보다 더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형외과 의사가 통풍을 앓는다고 어디다 얘길 하겠노…”
환자들에게 당당하고 싶은 의사의 바람이 통풍으로 인해 한순간 무너졌지만 주저앉아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때 까지 환자들에게 제시했던 통풍에 관련한 통상적인 조언을 접어두고 다시 공부했다. 그를 괴롭히던 범인인 과도한 단백질을 잡아냈고, 마침 운명처럼 베지닥터를 만났다.
앞서 언급한 당뇨도 마찬가지지만, 통풍 발병은 그의 삶에 좋은 변곡점이 되었다. 꾸준히 채식을 실천한 그 후 1년, 1km도 버거웠던 조깅을 이젠 3km는 쉬지 않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향상되었다. 매일 점심 식사 후 몰아쳤던 피로감이 사라졌고, 수술 도중 갑작스레 괴롭히던 위장병이 사라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당뇨와 통풍을 완전히 몰랐던 때로 돌아간 것이다.
채식 ‘커밍아웃’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지기 쉽다는 법정스님의 글을 늘 가슴에 두고 산다는 송무호 박사. 자신 역시 병에 걸려 봤기 때문에 지금의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의사입장에서도 거듭 와 닿는다는 그 글은, 그를 찾아온 아픈 환자들에게도 긍정의 씨앗이다. 한 번 아파봐야 진정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고, 그 병을 조심하기 위해 음식과 생활습관을 평생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
병을 마주하는 긍정적 관점, 유쾌한 그답다.
그래서 그는 말을 조금 바꿨다. 무병장수가 아닌 ‘일병장수’, 건강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자기 몸에 대한 과신은 삼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채식은 그가 말하는 일병장수로 가는 길이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너무 못살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잖아. 부잣집 말고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어. 그래서 엄마들이 명절 때나 아버지 월급 탈 때나 소고기 반근이라도 구해다가 고깃국을 그렇게 끓이고 싶어 했지. 고기는 몸에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고기처럼 몸에 나쁜 게 없더라고.”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없던 어린 시절엔 그렇게도 고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고기가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시절 결핍도 일부나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려서 집이 가난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에겐 어둡게 느껴지는 가난의 흔적이 없었다.
천성이 낙천적인 송 박사는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지난 1년간 비건 생활을 해 본 후, 이젠 채식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자신 있게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사실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우유를 안 마셔서 칼슘부족으로 골다공증 생기는 건 아닌지. 노가다판이라고 칭하는 정형외과 수술실에서 영양부족으로 수술하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그렇게 염려 가득했던 과거도 부끄럽지 않은 시기가 왔다.
친구들과 모임을 가져도 고기 먹는 옆에서 버섯이나 양파를 구워 먹는다는 그는 이미 완전한 비건이다. 이제 회식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 회식장소를 정할 때면 뷔페를 고른다. 일단 시작은, 다양한 식습관을 존중하는 회식문화를 선도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식습관 차이를 좁혀 점차 서로에게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송무호 박사.
“그럼 이제 당연하지. 예전에는 내가 자신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기가 힘들었어. 회식 자리 가도 고기 이만큼 몇 점 먹는 척 하고… 야 너는 고기 안 먹느냐 물을 때 채식한다고 하면 또 이상하게 볼 까봐… 내가 자신이 없었거든. 그래서 남한테 권할 수도 없었고.
이젠 막 권하지. 이젠 진짜 커밍아웃이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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